2024년 11월 2일 토요일  
로동신문
실화
우리 일터

2024.11.2. 《로동신문》 4면


해는 어느덧 서산마루를 넘어가고있었다.

그러나 은파군원료기지사업소 광명작업반 반장 박종철은 방금 수확한 단고구마무지앞에서 오래도록 떠날줄 몰랐다.

(당함량이 30%이상이나 되는 단고구마를 수십t이나 거두어들였으니 이것만으로도 10여t의 물엿은 문제없이 생산할수 있겠군.)

이렇게 속구구를 해보는 박종철의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비껴흘렀다.

정말이지 단고구마농사를 잘만 하면 당의 사랑속에 지금 멋들어지게 일떠서는 군지방공업공장에 당원료를 얼마든지 보장해줄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이날을 위해 바쳐온 헌신의 나날이 주마등마냥 떠올랐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당의 새로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받아안고 크나큰 감격과 흥분으로 들끓고있던 지난 1월 어느날 침상에 누워있던 박종철은 조용히 집문을 나섰다.그리고 오래동안 지배인으로 일한 사업소의 원료기지포전으로 향하였다.

오래전에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그는 뜻밖에도 전날 신문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김화군처럼 마음먹고 달라붙어 지방공업공장건설과 원료기지조성사업을 다같이 내밀면 얼마든지 지방경제를 추켜세울수 있으며 지방인민들의 생활에서 실제적인 개변을 가져올수 있다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시정연설을 자자구구 새겨안느라니 박종철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높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우리 당의 새로운 지방발전정책을 현실로 꽃피우는데서 시, 군원료기지사업소들이 한몫 단단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시바삐 자리를 박차고 일터에 달려나가고싶었다.

그러나 흥분을 눅잦히고 최근 몇년어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느라니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오랜 세월 병과 싸우다나니 몸도 훨씬 약해졌는데 이제 또 숱한 일감을 안고 뛰여다니느라면 병상태가 어떻게 악화되겠는지 그자신도 전혀 가늠할수 없었다.자신이 이제는 성쌓고 남은 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런 속에 어느덧 그의 발걸음은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광명작업반 전산분조포전에 이르렀다.그가 흰눈덮인 드넓은 포전을 정찬 눈으로 둘러보고있는데 문득 등뒤에서 《지배인동지》라고 찾는 귀에 익은 부름소리가 들려왔다.사업소의 이악쟁이로 소문난 전산분조장 김성희였다.반갑게 인사를 나눈 박종철은 분조의 새해 농사차비정형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거름생산도 거의 끝나가고 영농준비도 다됐는데 지배인동지가 없으니…》

채 끝맺지 못한 그의 말에서 박종철은 정든 일터가 자신을 부르고있음을 느꼈다.군원료기지사업소가 우리 당의 새로운 지방발전정책실현의 앞장에서 내달려야 하는 오늘 누구보다 사업소를 잘 알고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심한 순간 박종철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기 시작했다.

그렇다.숨이 멎는 순간까지 일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지금 당과 혁명이 그것을 절실히 바라고있다.비록 몸상태때문에 지배인사업은 하지 못하더라도 한개 작업반이야 이끌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날 군당위원회를 찾아간 그는 자기의 절절한 심정을 터놓았다.

그러나 군당책임일군은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사실 원료기지포전들이란 농장포전들과 같이 한곳에 집중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여러곳에 널려져있어 한번 돌아보자고만 해도 품이 여간 들지 않는다.하물며 몸에 시한탄을 안고있다고 할수 있는 그가 누구보다 많이 뛰여다녀야 하는 작업반장사업을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하여 군당책임일군은 서뿔리 결심을 내릴수 없었다.

《난 동무가 사회보장을 받고 병치료에 전념하길 바랐는데…》

《그 마음은 고맙지만 당에서 우리 일터를 지켜보고있는데 한뉘 원료기지사업소에서 일해온 내가 어떻게 그냥 누워만 있겠습니까.믿어주십시오.》

정든 자기의 일터를 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일터로 만들겠다는 불같은 그 마음을 무슨 힘으로 막을수 있으랴.하여 광명작업반 반장이 된 그는 도무지 앓는 사람같지 않게, 오히려 건강한 사람보다 더 왕성하게 일판을 벌려나갔다.

거름생산, 새땅찾기, 작업반건물보수, 강냉이창자건설…

당에서 보내준 새 뜨락또르와 농기계들을 받고나서 박종철은 더욱 성수가 나서 뛰여다니였다.우리 작업반을 기어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아시는 일터로 만들자고 하면서 늘 남보다 두몫, 세몫의 일감을 지고 낮과 밤이 따로없이 일하였다.

그의 불같은 이신작칙과 작업반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작업반의 면모는 나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 새로 육종한 《단고구마1》호의 조직배양모들이 사업소에 도착했을 때에도 그는 자진하여 단고구마재배를 맡아나섰다.

그 무슨 재배경험이나 기술적타산이 있어서가 아니였다.당에서 바라는 문제는 기어이 자신들이 앞장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자각이 그로 하여금 선뜻 맡아나서게 하였던것이다.하지만 고온이 지속되는 속에서 재배해본적도 없는 애어린 단고구마모를 심어 살린다는것이 헐치 않았다.

아무리 물을 충분히 주고 심어도 다음날이면 애어린 단고구마모가 시들시들 말라버리기가 일쑤였다.그럴 때면 박종철은 잎이 무성한 가둑나무가지를 해볕에 늘어진 단고구마모옆에 정히 꽂아주었다.그리고 저녁이면 어린 모가 새벽이슬을 듬뿍 맞을수 있게 가둑나무잎들을 모두 벗겨주었다.

그렇게 10여만싹에 달하는 단고구마모들을 애지중지 다루느라 지칠대로 지친 종업원들속에서 아무래도 우리 힘으로는 안될것같다는 맥빠진 소리가 때없이 울려나왔다.그때마다 박종철은 이렇게 절절히 이야기하였다.

《힘을 합쳐 기어이 단고구마풍작을 안아오자구.》

이런 뜨거운 마음이 자양분이 되여서인가 단고구마모들은 마침내 푸른 잎새를 활짝 펼치기 시작했다.그러나 단고구마포전에 바쳐가는 박종철의 헌신과 노력에는 끝이 없었다.

어느날 뜨락또르에 세멘트와 모래를 싣고온 그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는 곳에 몰탈로 작물명과 포전담당자의 이름을 새겨넣은 표식비를 품들여 만들어세웠다.그리고 포전둘레에 조약돌을 정히 깔아놓은 그는 회칠까지 정성스럽게 하기 시작했다.영문을 알수 없어 의아해하는 종업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늘 경애하는 원수님을 꽃속에 모시자고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는데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우리 원수님께서 푸른 잎 설레이는 이 단고구마포전을 보시면 아마 꽃밭을 보신것보다 더 기뻐하실거요.》

바로 그런 소중한 마음이 있어 박종철은 단고구마농사와 강냉이농사에서도, 작업반을 도적인 본보기로 꾸리는 사업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안아올수 있었다.

* *

지금 안팎으로 달라진 광명작업반을 두고 이곳 작업반원들은 우리 일터라고 더욱 정담아 부른다.

우리 일터, 비록 그 부름은 소박해도 얼마나 소중한 애국의 마음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언제나 우리 일터라는 부름을 가슴에 안고 자기 일터를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성돌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늘 시대가 바라는 참된 애국자들이다.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