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 《로동신문》 3면
얼마전 선교구역 영제동 21인민반 반장 박애란녀성이 본사편집국으로 한통의 편지를 보내여왔다.
《애국은 보석과 같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룡성로동계급이 지녔던 티없이 맑고 순결한 량심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나라위한 길을 사심없이, 변함없이 걸어갈 새로운 각오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되였다는 그의 토로는 참으로 절절하였다.아래에 그 일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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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군의 길을 걸을 결심을 내린것은 지금으로부터 근 30년전이였습니다.
원군길을 걷기 시작하여 몇해가 흐른 어느날 우리 가정에 난데없이 불행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남편이 출장길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여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
그때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저는 원군길을 림시 중지하고 남편부터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남편이 어느 정도 호전되면 그때 가서 다시 원군의 길을 걷자, 이것이 저의 속생각이였습니다.
그러나 한가정의 안해로서 제가 남편에게 기울이는 정보다 더 큰 사랑과 혜택이 와닿고있는줄을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저의 남편이 중앙급병원에서 돈 한푼 내지 않고 치료를 받은 8년간의 나날 당과 국가가 안겨준 온갖 사랑과 혜택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말할수 있단 말입니까.그 사랑과 은정에 떠받들려 현대의학이 이미 《불치》라고 선고를 내린 남편의 병은 기적적으로 완쾌될수 있었으며 마침내 남편은 다시 대지를 밟고 일어설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날 저는 밤새껏 자신을 타매하며 울었습니다.
나라에서는 평범한 나날에나 준엄한 나날에나 변함없이 이 땅의 수천만 자식들에게 온갖 사랑과 정을 깡그리 쏟아붓고있는데 나라위한 길에 나섰던 나는 조건과 환경이 불리해진다고 하여 자기의 량심을 저버렸던것입니다.난관앞에서 주춤거리며 애국의 길에서 리탈되였던 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당조직을 찾아간 저는 동, 인민반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서 참가하여 자기 가정뿐 아니라 온 인민반을 애국자집단으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피력하였습니다.당조직에서는 저의 결심을 적극 지지하며 인민반장사업을 맡겨주었습니다.그 믿음과 고무속에 저는 맡은 일에 언제나 전심전력하였으며 좋은 일들을 적극 찾아하였습니다.
눈앞에 삼삼히 어려옵니다.《녀맹》호로 불리우는 전투기술기재를 마련하는 사업에 앞장서던 나날이며 당에서 제일로 걱정하는 농사문제해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해오던 나날, 명절을 비롯한 주요계기마다 금수산태양궁전에 자기의 지성을 다 바치던 나날과 생활이 어려운 세대를 도와주기 위해 진정을 바치던 나날이…
당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저를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제7차대회 대표로 불러주었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는 올해에도 수해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원사업에 성심성의껏 참가하였으며 인민반원들과 함께 화성지구 3단계 1만세대 살림집건설장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저도 60고개를 바라보고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정신창조자들이 지니였던 순결한 량심앞에 자신을 세워볼수록 더더욱 깊이 새기게 되는것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량심, 그 량심을 절대로, 순간도 흐리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량심으로 선택한 애국의 길을 사심없이, 끝까지 이어가자.바로 이것이 제가 당보지상연단에 나서서 다지는 결의입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