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세월이 흐른들 원한을 어찌 잊으랴
수산리계급교양관 관리원 리재현동무의 일가가 당한 참상을 두고

2024.11.2.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수성을 바로 알게 하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한 조국해방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부모와 형제자매들, 귀중한 전우들과 벗들을 앗아가고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수산리계급교양관에서 일하고있는 리재현동무는 애국자묘의 관리를 맡아하고있다.그는 매일 애국자묘와 그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나서 그앞에 오래도록 서있군 한다.그러면 철들자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은 피맺힌 이야기들이 되새겨져 그의 마음을 원쑤놈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끓게 한다.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당부했다.

《애국자묘에는 우리 일가친척 19명도 묻혀있다.그들의 원한을 절대로 잊지 말거라.그리고 대를 이어서라도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해야 한다.》

하다면 이 애국자묘와 그의 가정은 과연 어떤 피맺힌 사연으로 이어져있는것인가.

리재현동무의 아버지 리점희와 그의 가정은 해방전 한뙈기의 땅도 없어 지주놈의 소작살이를 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리점희는 징병에까지 끌려가 일본놈들의 대포밥으로 내몰린적도 있었다.

이처럼 비참하였던 그들의 생활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것은 바로 나라가 해방되여서부터였다.

토지개혁으로 제땅을 가지고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하던 리점희의 일가친척모두에게 그야말로 기름진 옥답이 차례졌던것이다.그의 일가친척들은 지지리도 못살던 자기들을 나라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그 은덕이 너무 고마와 해방된 조국에서 있는 힘껏 농사를 지었고 나라에 선참으로 애국미도 바쳤다.그 나날 누구보다 애국심과 정의감이 열렬했던 리점희는 마을의 당세포위원장 겸 자위대장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행복한 나날이 흐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넘치던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

리점희는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 머슴살이를 강요당하던 자기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땅을 받아안고 너무나 행복했던 잊지 못할 날들을 다시금 그려보았다.그런데 그 귀중한것을 또다시 빼앗으려 미국놈들이 달려드는데 그놈들을 어찌 용서할수 있단 말인가.하여 그는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갔고 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위훈만을 세웠다.

가렬처절한 싸움의 나날 그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백배해준것은 그리운 고향땅의 부모처자와 이웃들의 정다운 모습이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일가친척들, 이웃들과 함께 또다시 마음껏 농사를 지어볼 열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소식이였다.

고향에는 그의 일가친척이 한명도 남지 않았던것이다.그는 마을사람들로부터 그 피맺힌 사연을 전해들었다.

조국이 어려운 시련을 겪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은 리점희의 고향마을에도 기여들었다.

놈들은 리점희가 해방후 마을에서 당세포위원장 겸 자위대장을 하였다고 하여 그를 첫 학살대상으로 정하였다.그러나 그가 인민군대에 나갔다는것을 알게 되자 악에 받쳐 날뛰던 놈들은 어느날 마을에 남아있던 리점희의 일가친척모두를 체포하였다.

놈들은 악질빨갱이가 나온 인민군대후방가족이라고 하면서 그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던 끝에 일가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목에 통나무를 가로질러놓고 그우에 타고앉아 무참히 살해하였다.그리고는 일가친척모두를 산으로 끌고가 어른들은 총으로 쏘아죽이고 아이들은 전호구뎅이에 밀어넣고 생매장해죽이는 야수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렇게 되여 하루아침에 리점희의 일가친척 19명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였다.

이것이 어찌 리재현동무의 일가만이 당한 가슴아픈 참상이겠는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침략자들과 계급적원쑤들은 강서구역 수산리에서 무려 100여가지나 되는 야수적인 방법으로 로동당원들과 열성농민들, 그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민들을 고문, 학살하였다.

이렇게 숨진 고향사람들과 리재현동무의 일가친척 19명이 바로 이 애국자묘에 묻혀있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가정과 고향땅의 피맺힌 과거사를 들으며 자란 리재현동무였기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남먼저 혁명의 군복을 입었으며 오늘은 계급교양의 전초선을 지켜선 수호자가 되여 수산리계급교양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19명 일가친척의 복수를 아니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에 의해 처절한 죽음과 고통을 강요당한 이 땅의 모든이들의 복수를 절절히 당부하고있다.

리재현동무의 아들도 원쑤놈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을 안고 복수의 총대, 계급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았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른다 해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인민이 당한 이 피맺힌 원한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서라도 원쑤놈들을 끝까지 복수해야 한다.

본사기자 박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