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 《로동신문》 5면
숙천군 채령농장 제2작업반 반장 동성국동무는 농장은 물론 군적으로도 손꼽히는 초급일군이다.
근 10년째 작업반장으로 사업하면서 뒤떨어졌던 작업반을 다수확단위로, 전투력이 강한 집단으로 추켜세운 경험을 취재하기 위해 얼마전 우리는 그와 마주앉았다.
그런데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한참이나 갑자르던 그가 불쑥 이렇게 말꼭지를 떼는것이였다.
《제 별명이 무엇이였는지 압니까.〈동안전〉이였습니다.선진영농방법도입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남들이 해본 다음 좋으면 우리도 하자고 늘 외우며 도리머리를 젓군 했으니까요.그러던 제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탈곡장에 널어놓은 총알같은 벼알들을 한웅큼 쥐며 그는 추억의 실꾸리를 풀어나갔다.
《농업에서 증산의 중요한 예비는 현대농업발전추세에 맞게 영농방법을 혁신하는데 있습니다.》
손탁이 세면서도 인정많고 꼼꼼한 그의 일본새에 의해 작업반의 알곡생산량은 첫해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어느새 작업반은 농장적으로 2등이라면 섭섭해할 정도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다수확작업반이 되고 동성국동무는 모두가 인정하는 본보기작업반장, 능력있는 초급일군으로 소문이 났다.그럴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애써 찾은 명예를 고수해야 한다는 자각이 순간도 떠날줄 몰랐다.
그래서인지 다른 모든 일에는 극성인 그가 선진영농방법도입문제에서만은 대단히 심중하였고 지어 랭담하기까지 했다.괜히 서뿔리 접어들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칠수 있다, 농사는 우선 안전하게 짓고봐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그러던 몇해전 군적으로 선진적인 논물관리방법을 적극 받아들일데 대해 강조할 때였다.
여느때처럼 앞선 영농기술에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는 새로 임명된 이웃작업반장에게도 조용히 귀띔해주었다.자기처럼 뜨락또르운전수출신의 반장이여서 은근히 왼심을 쓰며 걸음걸음 경험을 배워주던 동성국동무였기에 이번에도 군에서 보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대담하게 많은 면적에 도입하려는 그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주었다.
《한번만 실수해도 한해를 잃게 되는것이 바로 농사일이지.경험에 기초해서 안전하게 농사짓는것이 기본일세.먼저 적당한 면적에 시험도입해보게.》
그러면서 새 논물관리방법이 간석지포전이 많은 자기네 농장의 실정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데 대해 설명도 해주었다.하지만 기어코 50%의 면적에 도입하고야만 새 반장의 진취성에 내심 탄복하면서도 무모한 《대담성》이 초래할 후과로 하여 걱정과 지어 동정까지 앞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가 그 방법을 도입한 이웃작업반의 포전들에 사방으로 금이 가고 어린 벼포기들이 새들새들 말라가는것을 보며 저러다가 농사를 망치겠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들이 연방 울려나왔다.
동성국동무는 더 참지 못하고 이웃작업반에 달려갔다.
《내 뭐랬나.그만큼 말렸는데 고집하더니 첫해부터 농사를 망칠셈인가.》
하지만 그곳 반장의 얼굴에는 조금도 주눅드는 기색이 없었다.오히려 웃음을 지어보이며 저력있는 어조로 말했다.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반장동지의 마음은 고맙습니다.하지만 선진영농방법에 대한 반장동지의 립장에는 공감할수 없습니다.한해가 아니라 하루, 한시간이 다르게 시대는 발전하는데 우린 언제까지 경험에 매달려 거부기걸음만 하겠습니까.올해 10%, 래년에 20%, 이런 식으로 〈침착하게〉, 〈안전하게〉 일해서야 언제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고 인민들의 식량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시는 우리
순간 동성국동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만 같았다.자기보다 나이도 경험도 퍽 어린 풋내기라고 생각했던 신임반장이 아득히 높은 곳에서 자기를 굽어보는듯한 느낌에 숨이 꺽 막히기까지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전야에 펼쳐지는 화폭은 그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선진영농방법을 받아들인 포전들에서 논벼들이 왕성하게 아지를 치는것이 눈에 띄게 알렸다.평당아지수는 100~150대나 더 많아지고 이삭당알수도 5알이상 늘어난 포전들에서 마침내 가을에는 정보당 평균 1t이상이나 더 높은 수확고가 났다.
놀라운 현실앞에서 동성국동무는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 작업반의 10%와 이웃작업반의 50%,
두 작업반의 판이한 선진영농방법도입실태는 결코 대담성을 보여주는 수자가 아니였다.당의 걱정, 나라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가, 자기의 명예와 안위부터 생각하는가.바로 이런 량심과 애국심의 높이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때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아무리 우월한 선진영농방법들이 많이 보급되여도 우리 초급일군들의 관점과 립장이 바로서지 않으면 언제 가도 나라의 농업을 추켜세울수 없고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수 없다는 자책에 가슴이 저려들었습니다.과학농사를 말로만 외우면서 경험주의, 요령주의를 부리다가는 잠간사이에 락오자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는 교훈도 깊이 새겼습니다.》
탈곡장에 들어서는 중량화물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아쉽게도 그의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이제 두차만 더 실어보내면 수매는 물론 공급까지 결속하게 된다며 량해를 구하는 그의 등을 우리는 기꺼이 떠밀었다.
대신 기술원 로옥순동무가 그후의 이야기를 계속하여 들려주었다.
그때부터 동성국동무는 딴사람이 되였다.늘 입버릇처럼 외우던 《안전하게》, 《남들이 해본 다음에》라는 소리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대담하게》, 《우리가 먼저》라는 말이 때없이 울려나왔다.농장의 농업과학기술보급실과 군미래원의 단골손님이 되고 선진영농방법과 제품들을 통이 크게 받아들이기 위해 두팔걷고 뛰여다녔다.
그 나날 작업반에서는 복합미생물처리제 《지력1》, 생리활성물질인 피토신을 비롯한 우수한 제품들을 먼저 받아들이고 영양랭상모도입면적도 대폭 늘여 지난해에 이어 올해 농사에서도 장훈을 부르게 되였다.1등작업반의 영예를 변함없이 고수하게 되였다.
잠간사이에 쌀마대를 가득 싣고 탈곡장을 떠나는 중량화물자동차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동성국동무의 입가에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여올랐다.
본사기자 장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