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9일 토요일  
로동신문
대를 이어 지켜가는 애국의 초소

2024.11.8. 《로동신문》 4면


넘겨주고 넘겨받는것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중형기계직장 로동자 김일영동무는 수십년간 한직종에서 일하고있는 기능높은 오랜 타닝공이다.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것은 단지 로동년한이나 기술기능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자기가 오래동안 다루어온 기대앞에 아들까지 세웠다.

아들이 군사복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생각이 많았다.아들도 포부가 있겠는데 자기처럼 타닝공이 될 마음이 없는가고 선뜻 물어볼수가 없었던것이다.하지만 당에서 제일로 중시하는 일터에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 고결한 량심과 의리만은 자식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고싶었다.하여 그는 아들을 데리고 련합기업소의 곳곳을 돌아보며 당의 령도업적에 대하여 뜨겁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왜서 아버지가 그 어떤 평가나 대가도 바람이 없이 수십년세월 묵묵히 한직종에서 일해왔는가를 알게 된 그의 아들 김금혁동무는 자기도 아버지처럼 당의 뜻을 맨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진짜배기로동계급이 될 결심을 굳게 다지고 시간을 아껴가며 설비에 정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그 과정에 그는 당이 맡겨준 과업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는것을 생의 신조로 간직하게 되였다.

지금도 매일 교대시간이면 한기대앞에 서군 하는 그들부자에게 있어서 인계하고 인계받고있는것은 단순한 설비의 기술상태만이 아니다.그것은 이 나라 로동계급으로서 당의 부름에 언제나 실천으로 화답할줄 아는 참된 애국의 넋과 정신을 넘겨주고 넘겨받는 과정이다.

안정철

 

아버지에 그 아들

 

우린 언제나 천리마의 고향에서 일하는 로동계급이라는것을 잊지 않고 우리 당을 강철로 충직하게 받들어왔다.너도 크면 강철전사가 되거라.

이것은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를 지키던 그 정신으로 나라의 강철기둥을 더 굳건히 다져나가는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친 아버지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강철직장 로장 장련찬동무에게 어릴 때부터 자주 하던 말이였다.

장련찬동무는 아버지의 당부를 전세대의 절절한 당부로 가슴깊이 새겨안고 제대되여 사회생활의 보람찬 첫 자욱을 강선의 로앞에서 새겨갔다.

그는 용해작업에 필요한 설비들에 정통하기 위한 기술학습을 직심스럽게 하는 한편 작업이 끝나면 분석지표를 보면서 작업방법에 따르는 기능을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했다.하여 그의 기술기능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뛰여올랐고 얼마후에는 혁신자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렀다.그 나날 장련찬동무는 강철직장 용해공, 로장으로 일하면서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일터에 대한 무한한 애착심을 안고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왔다.그는 합리적인 기술혁신안을 생산에 도입하는 한편 여러명의 기능공을 양성하여 용해공대오를 튼튼히 꾸리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로앞에 처음 서는 신입공들에게 그가 오늘도 입버릇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쇠물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진짜배기용해공이 될수 없다는것이다.

오늘도 그는 방열복차림으로 로앞에 서있다.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본사기자

 

푸른 숲이 전하는 사연

 

평산군산림경영소 공훈산림공 윤경국동무와 그의 아들 윤광철동무를 보고 사람들은 애국자부자라고 부르고있다.산림감독원인 아버지와 아들이 다같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것이다.

윤광철동무는 지금도 제대되여 고향으로 왔을 때를 잊지 못하고있다.따뜻한 봄날 볼일이 있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선 그는 길에 나서기 바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인사를 받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깊어졌다.

언제인가는 마을에서 오래동안 살고있는 한 늙은이가 그에게 다가와 자네는 참 좋은분을 아버지로 모시고있다고, 처음에는 고까운 생각도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되였다며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것이였다.지어 동네아이들도 산림감독원할아버지덕에 여러가지 산열매들을 마음껏 먹는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럴수록 아버지처럼 산림감독원이 되여 한번 본때있게 일해볼 생각이 그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놓았다.하여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을 가꿀것을 결심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산림조성과 관련한 풍부한 지식을 배웠다.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산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그 나날 그들부자는 천수백정보를 더 맡아안고 산마다 울창한 푸른 숲을 펼쳐놓았다.거기에서 해마다 거두어들인 산열매는 또 얼마인지 모른다.

푸른 숲과 더불어 애국의 대, 충성의 대는 이렇게 굳건히 이어지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