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3. 《로동신문》 2면
지난 8일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에서는 또다시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다.
꿈같은 평양체류의 나날을 이어가고있는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당의 은정어린 겨울철피복류와 가방을 받아안은것이다.
《우리는 인민을 끝없이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을 참다운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질좋고 맵시있는 새옷들을 쓸어보며 수해지역 주민들은 더울세라 추울세라 다심히 보살피시며 거듭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지금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숙소는 말그대로 격정의 도가니가 되여 끓어번지고있다.
열병훈련기지 4호동에서는 량강도에서 온 주민들과 학생들이 살고있다.
당의 은정속에 받아안은 솜옷과 내의, 털구두 등을 한참이나 쓸어보던 김형직군 읍의 리옥경녀성은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이 솜옷과 신발을 어떻게 무심히 대할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비단 그의 심정만이 아니였다.
옷을 받아안기 얼마전에 자기들의 숙소에 펼쳐졌던 화폭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평생 잊을것같지 못하다며 김정숙군 장항농장의 한 농장원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0월중순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로는 경공업성과 지방공업성의 일군들 그리고 수도 평양의 피복생산자들이 찾아왔다.그들은 여러날에 걸쳐 1만 수천명에 달하는 수재민들의 몸과 신발문수를 일일이 재였다.
《사실 고향에서도 그렇고 TV에서도 학생들의 몸재기를 하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습니다.하지만 어른들에게까지 이렇게 꼭 맞는 옷을 해입히려고 몸을 재고 신발문수까지 정확히 재여주는 일은 평양에 올라와 처음 보았습니다.》
정말 그랬다.당의 은정어린 조치에 따라 얼마전 가을옷을 마련해주기 위해 숙소에 찾아왔던 경공업성, 지방공업성 일군들과 생산자들이 이번에는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겨울옷과 신발의 호수를 확정하러 또다시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숙소가 바다처럼 설레였다.
신발문수재기가 한창인 어느한 방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70나이를 넘긴 한 로인이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서니 경공업성 신발공업관리국의 한 일군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그리고는 하얀 종이에 발모양까지 그려넣으며 꼼꼼히도 신발문수를 확정하였다.
발끝을 꼭 누르며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겨울신발인것을 고려하여 치수를 얼마만큼 조절해야 하는가를 가늠해보기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로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당의 사랑이 가슴에 마쳐와 감격해하던 로인은 그만 그 일군의 손등에 눈물방울을 뚝 떨구고말았다.그리고는 입속으로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몇번이고 뇌이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한목소리로 어머니라 부르는 우리 당이 아니고서야 어찌 수재민들을 이렇듯 따뜻이 품어안고 보살필수 있으랴.
문득 우리의 눈에 한 어린이가 이름표가 달린 새 솜옷을 입고 복도를 좁다하게 오가는 모습이 안겨들었다.가까이 다가가보니 앞가슴에 《리태원 남자 3살 100/50 량강도 4호동 346호실》이라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순간 가슴이 저도 모르게 뭉클해지는데 어느새 곁에 다가선 한 일군이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태여난지 13달이 되는 어린아이로부터 고령의 로인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안겨진 겨울옷과 신발, 가방들에 이렇게 이름표가 다 있습니다.》
이는 진정 자식을 귀중히 보살피며 온갖 정을 다 쏟아붓는 어머니의 진함없는 사랑의 결정체가 아닌가.하기에 이름표가 달린 새옷과 신발, 가방을 받아안던 시각 어머니당의 다심하고 세심한 그 정이 가슴에 마쳐와 어른들도 아이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재민들은 누구나 이제는 한없이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부러운것없이 생활하는데 습관이 되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라에서 철따라 새옷과 신발을 보내주고 생활필수품과 화장품이 부족할세라 특별히 관심하여 안겨줄뿐 아니라 1만 수천명가운데서 생일을 맞는 사람이 있을 때면 풍성한 음식상까지 차려주는 다심한 정,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곁에서 밤깊도록 잠 못들며 치료대책도 세워주고 수해지역의 주민들과 학생들이 명승지나 야영소로 떠날 때에는 어머니의 손길로 려장도 일일이 차려주며 마음쓰는 그 사랑속에 더운줄도 추운줄도 모르고 부러운것도 없다는 그들이다.
재산이 너무도 많이 늘어나 어떻게 다 가지고가랴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고, 그런데 당에서는 멋진 가방까지 매 사람에게 안겨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수재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며 한뉘 농사를 지어온 농사군들이 그 이름도 유명한 《진성》, 《은하》, 《류원》, 《매봉산》, 《소나무》 등의 상표가 붙은 솜옷이며 털구두, 가방을 받아안았으니 이제는 정말 멋쟁이가 되였다며 웃음속에 터놓는 말도 들을수록 가슴뜨거웠다.
의주군 서호리에서 온 수재민들속에는 올해 9살 난 신평미학생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 김혜경녀성은 곱게 맞는 딸의 솜옷을 몇번이나 어루쓸며 《우리 평미의 솜옷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알고보니 평미는 수도 평양에 올라온 때로부터 키가 거의 5cm나 컸는데 겨울옷의 호수를 확정하기 위해 몸재기를 할 당시에 비해 솜옷을 받았을 때에는 그만 키가 조금 더 컸다는것이였다.그런대로 한해겨울은 입힐수 있겠다고 생각한 김혜경녀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환해진 딸의 모습을 보며 기쁨에만 겨워있었다.
그런데 옷을 받아안은지 얼마 지나서 담임교원이 달려오더니 피복생산자들이 평미가 그새 키가 더 큰것을 몰랐다고 하면서 그의 솜옷을 가져오라고 했다는것이였다.얼마후 다시 돌아온 담임교원은 새 솜옷을 평미에게 입혀보는것이였다.이제야 보기 좋게 들어맞는 딸의 솜옷을 바라보던 김혜경녀성은 그만 참고참던 오열을 터뜨리며
날마다 가슴뭉클하는 사랑과 은정에 접할 때마다 생각이 깊어진다고, 그것을 시와 노래에 담는것이 이제는 흔한 일로 되여 평양체류기간에 누구라 할것없이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였다는것이 수재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수재민들은 당의 은정속에 희한하게 일떠서는 고향마을들을 TV화면에서 보고 또 보며 고마운 조국을 한몸 다 바쳐 받들 불같은 맹세를 굳게 가다듬고있다.
진정 인민을 지키고 받들기 위해 온넋을 깡그리 바치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무상의 영광으로 여기는 어머니 우리당 조선로동당이 있기에 이 땅에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 격정의 화폭들이 끊임없이 펼쳐질것이다.
글 본사기자 오은별
사진 본사기자 김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