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3. 《로동신문》 6면
금천군 읍에서 살고있는 엄영분로인에게는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피절은 원한이 있다.그의 몸에는 아직도 70여년전 미제원쑤놈들에게서 피해를 입은 총창자리가 력력하다.팔에 험상궂게 생긴 상처로 하여 삼복철에도 언제한번 소매가 짧은 옷을 입지 못했다는 로인의 가슴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을 응어리가 맺혀있다.
엄영분로인의 체험담은 미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만행이 얼마나 악랄하고 치떨리는것인가를 새겨주고 구천에 사무친 그 원한을 기어이 갚고야말리라는 서리발치는 증오와 분노로 우리의 피를 펄펄 끓게 하였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수성을 바로 알게 하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한 조국해방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부모와 형제자매들, 귀중한 전우들과 벗들을 앗아가고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7살 나던 영분이도
그들일행이 어느한 골짜기를 지날 때 갑자기 원쑤놈들이 달려들었다.영분의
이때 영분과 5살 난 남동생은
의식을 잃은채 겨우 숨이 붙어있던 영분이 인민유격대원들에 의하여 구원된것은 그로부터 몇시간후였다.
인민유격대원들은 시꺼멓게 타서 형체만 남은 어린 소년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진 소녀의 참혹한 정상앞에서 비분과 증오에 몸부림치며 백배, 천배의 복수를 다짐하였다.
당시 영분은 너무도 여린 생명이였다.하지만 죽어서는 안되며 살아서 철천지원쑤들을 고발단죄해야 할 그였기에 마침내 소생하였으며 복수자로 자랐다.
우리 조국이 전쟁의 준엄한 시련을 겪기 전, 평화롭던 그 시절의 영분은 울기도 잘하고 눈물도 헤프던 소녀였다.
그러나 원쑤놈들에게 가족들을 잃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영분은 영 딴 아이가 되여버렸다.그 어린 나이에도 이 세상에 눈물로 해결될 일이란 없다는것을 알게 된듯 그는 좀처럼 눈물을 몰랐으며 미국놈소리만 나와도 눈에서 불이 이는것같았다.생활의 순간순간마다에 당하게 되는 그 모진 아픔이 곧 미제원쑤놈들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으로 어린 가슴을 끓게 하였던것이다.
가슴속에 복수의 일념을 안고 사는 소녀는 학습에서도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였다.
그의 학습장의 첫 페지마다에는 복수하리라는 글발이 어김없이 새겨지군 하였다.
영분에게 짐승도 낯을 붉힐 치떨리는 만행을 감행하면서 원쑤놈들이 바란것은 그가 숨이 지거나 불구자가 되여 한생 눈물과 한탄속에 시들어말라버리는것이 아니였겠는가.
그러나 놈들은 오산했다.
영분은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과 더불어 행복하고 긍지높은 삶을 누려왔다.
그 어디에 가나 자기를 더 아끼고 위해주지 못해 애쓰는 뜨거운 사랑을 늘 온몸으로 느껴온 영분이였으며 그러한 따뜻한 사랑을 체감할수록 미제원쑤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더욱 강렬해진 그였다.
처녀로 자란 영분은 남들처럼 몸이 성하지 못한 자기 일신상의 문제를 두고 이미 굳게 결심한바가 있었다.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동무들과 군당위원회일군들의 지성끝에 그는 한 청년과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일생의 뜻깊은 날에도 가슴에 꽃송이를 단 신랑신부가 부른 노래는 원쑤격멸의 노래였으며 그들이 나눈 이야기도 원쑤 미제에 대한 복수의 맹세였다.신혼부부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하여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복수의 피가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결혼후 세 자식의 어머니가 된 영분은 어느한 피복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자기가 더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공장의 종업원들앞에서 자기의 체험담을 들려준 일이 있었다.미제원쑤놈들의 극악한 만행을 폭로한 영분의 이야기를 듣고난 종업원들은 살인귀 미제에게 천백배의 죽음을 주자고 웨치면서 복수의 결의를 다지였다.
이 일을 계기로 영분은 자기가 무엇보다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사람들앞에 미제의 만행에 대한 고발자, 산증인으로 출연하여 그들의 가슴마다에 철천지원쑤 미제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불길을 세차게 지피였다.
오늘도 그의 집으로는 새세대 청년들이 찾아온다.그러면 로인은 수십년전에 겪은 참상을 들려주고나서 이렇게 격분을 토하군 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고, 미제에게서 천백배의 피값을 받아내기 전에는 결코 죽을수가 없기때문이라고.
그는 오늘도 미제의 승냥이본성을 고발하며 계급교양의 길을 걷고있다.
본사기자 엄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