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로동신문
당결정을 채택한
문덕군 동사농장 초급당위원회에서는 당결정집행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여 짧은 기간에 농장을 알곡생산에서 앞장선 단위로 만들었다

2024.11.14. 《로동신문》 3면


4월생산총화가 끝난 뒤 문덕군 동사농장 초급당비서 조응남동무는 저으기 흥분되였다.회의에서 모내기를 5월말까지 끝낼데 대한 문제가 만장일치로 가결되여 당결정으로 채택되였던것이다.

군당위원회일군으로 사업하다가 두달전에 농장에 내려온 그로서는 사실 우려되는바가 없지 않았었다.농장의 형편으로 보아 필경 5월말까지 끝내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이런저런 론의가 많을것으로 예견했었다.그런데 참가자들모두가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손들어 찬성을 표시하는것이 아닌가.

모내기를 제철에 끝내는것이 한해 농사의 성과를 좌우할진대 가타부타 론할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분명 이런 목소리가 울렸을것이라고 초급당비서는 내심 장담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조직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앞에 제시된 당정책, 기본혁명과업을 철저히 수행하는데 당사업의 화력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당결정은 순조롭게 채택되였지만 그 집행과정은 첫걸음부터 헐치 않았다.

우선 문제로 된것은 뜨락또르와 모내는기계의 수리정비가 제대로 되여있지 않은것이였다.6대의 뜨락또르가 부속품이 없어 가동하지 못하는 형편이였고 모내는기계의 수리상태도 작업반들에서 보고한 내용과 차이났다.

초급당비서는 서둘러 부경리와 마주앉았다.

경리가 결원이다보니 관리위원회사업을 도맡아해야 할 그였지만 아무런 방도나 계획도 없었다.한동안 갑자르다가 고작 한다는 말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실망스러운 대답뿐이였다.

(그러니 하는껏 해보다가 못하면 할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당결정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자기자신도 뾰족한 방책을 찾지 못해 속을 앓는터인지라 그를 추궁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초급당부비서에게 안타까움을 호소하니 그는 태연스럽게 말하였다.

《부속품보장은 당연히 관리위원회의 몫이 아닙니까.우리 당일군들이야 행정에서 조직한 일을 뒤에서 밀어주면…》

초급당부비서의 말이 중둥무이되였다.초급당비서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던것이다.

그날 밤 초급당비서사무실의 불빛은 이윽토록 꺼질줄 몰랐다.

사실 당결정을 채택할 때 5월말까지 모내기를 끝낼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고 속을 터놓는 부비서에게 초급당비서는 그럼 왜 주저없이 손을 들었는가고 물었다.

《해마다 모내기를 앞두고 늘 당결정을 채택하군 했지요.그런데 실지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솔직하게 자기의 속마음을 헤쳐보이는 부비서를 대하니 초급당비서는 가책이 컸다.따져놓고보면 모든 책임은 초급당비서인 자신에게 있었다.구체적인 연구와 진지한 토의에 기초하여 실제적인 방도를 찾아쥐고 당결정을 채택하지 못하다보니 일군들과 초급일군들속에서 그것을 기어이 집행하려는 의식이 희박해졌던것이다.

문건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행을 위해 채택하는것이 당결정이다.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초급당비서로서의 구실을 똑똑히 하리라고 그는 결심했다.

당결정을 채택한지 사흘째 되던 날 제1작업반 초급일군들은 깜짝 놀랐다.초급당비서가 묵직한 배낭을 지고 나타났던것이다.당황해하며 서둘러 배낭을 받아내리는 초급일군들에게 초급당비서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물을 가져왔소.풀어보오.》

다음순간 탄성이 터져나왔다.착통이며 피스톤을 비롯한 뜨락또르부속품들이 배낭에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바로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수십리길을 다녀온 사실을 아직은 알수 없었지만 새로 온 초급당비서가 직접 배낭을 지고 나타날 때까지 부속품타령만 하며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은 자신들이 못내 민망스러웠다.

《자, 뜨락또르를 빨리 수리해서 남들의 곱으로 써레치기를 내밀기요.이틀 밀린 봉창을 해야지!》

그러면서 초급당비서는 기계화작업반쪽으로 성큼성큼 앞서 걸음을 내짚었다.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갈무렵부터 시작된 뜨락또르수리는 다음날 새벽 5시가 되여서야 끝났다.

간밤에 《생명》을 되찾은 두대의 뜨락또르가 퉁탕퉁탕 요란한 동음을 울리며 기세좋게 제1작업반포전으로 향하던 그 시각 초급당집행위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이신작칙으로 당결정관철의 첫 문을 솔선 열어제낀 초급당비서의 산 모범은 집행위원들에게 자기 할바를 깨우쳐주었다.가동을 못하고있는 4대의 뜨락또르를 마저 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분공조직사업이 이루어졌고 이틀후부터는 모든 뜨락또르들이 논판을 기운차게 누비게 되였다.

5월 11일, 드디여 모내기가 시작되였다.

출발은 동시에 했지만 며칠이 지나서부터는 실적이 명백히 차이나기 시작했다.시간이 흐를수록 그 폭은 점점 더 확실해졌다.

초급당비서의 시선은 제일 뒤자리에서 어물거리는 제1작업반에 가닿았다.

모내기실적이 떨어지는 기본원인은 모보장이 제대로 안되는데 있었다.모뜨기가 선행되지 못하여 어떤 날에는 모내는기계들이 거의 한겻이나 포전에 그냥 서있다싶이 한적도 있었다.

초급당비서는 포전에서 당원협의회를 열었다.올해에도 알곡고지를 12개 중요고지중의 지배적고지로 내세운 당의 의도에 대하여 강조하고나서 이렇게 절절히 호소했다.

모뜨기속도이자 모내기실적이다.우리 당원들이 남들보다 30분 먼저 모뜨기현장에 진출하고 하루작업을 마친 다음에는 1시간 더 모뜨기작업을 하자.그러면 모내는기계가 중단없이 가동할수 있을것이다.…

당원협의회가 있은 후 작업반의 모내기현장에서는 《모가 없다.》는 소리가 더는 울리지 않았다.당원들이 발동되니 불가능이란 없었다.

당결정집행, 그 한걸음한걸음은 어떤 경우에도 당적량심에 기초한것으로 되여야 한다.

모내기과정은 이곳 당원들이 그것을 실체험으로 새긴 나날이기도 하였다.

어느날 제6작업반 초급일군들은 2분조포전에 당장 모이라는 긴급지시를 받게 되였다.

사연인즉 이러했다.모내는기계가 가닿지 못하는 포전변두리들에 모보식이 제대로 되였는가를 확인하던 초급당비서의 눈길이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멎었다.다가가보니 빈포기가 더러 있었다.

이렇게 한평에 한포기가 빈다고 하면 짐작으로 계산해도 한정보에서 100㎏이상의 낟알을 잃게 된다.이것을 어찌 작다고 하랴.

그래서 초급일군들에게 모내기실적을 올리는데만 치중하지 말고 보식을 꼭 따라세울데 대하여 그토록 강조했건만 눈에 잘 띄는 가녁에만 낯을 돌리고있는것이 안타까왔다.

초급당비서는 황황히 달려온 작업반장이며 당세포비서, 분조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논두렁을 타고다녀서야 어떻게 빈포기를 볼수 있겠소.모내기를 질적으로 하지 못하면 설사 날자를 보장했다고 해도 당결정을 관철했다고 떳떳이 말할수 없소.모두들 논판에 들어서서 량심의 빈구석이 얼마인가를 직접 찾아보오.》

그날 초급당비서는 작업반초급일군들과 함께 그 포전의 빈포기를 하나하나 찾아 모를 꽂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초급일군들의 일본새는 완전히 달라졌다.분조장만 되여도 《논두렁지도》에 인츰 습관되군 하던 이들이 논판 한가운데 위치를 정하고 모내기의 질적보장을 위해 요구성을 부단히 높이였다.

모내기를 시작한지 20일째 되는 5월 30일 오전 드디여 제일 뒤떨어졌던 제1작업반과 제6작업반에서 모내기를 끝냄으로써 당결정은 빛나게 관철되였다.

동사농장에서 전 면적에 대한 모내기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은 군당위원회에서는 두번, 세번 거듭 확인을 했다.20여개 농장중에서 마지막으로 세번째 자리에 있군 하던 농장이 앞에서 세번째 순위를 차지하였으니 어찌 선뜻 믿어질수 있으랴.

이곳 일군들과 농장원들자신도 자기들이 해놓은 일을 두고 놀라와했다.뒤떨어진 농장이라는 말을 숙명처럼 감수해왔는데 비로소 앞선 단위대렬에 들어서는 첫걸음마를 떼고보니 사기가 하늘끝에 닿았다.모두들 다음번에는 3등이 아니라 1등을 하자고 윽윽했다.

그러는 그들을 바라보는 초급당비서의 뇌리에는 잊을수 없는 한달어간의 나날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당결정을 채택한 후의 그 하루하루와 함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도 달라졌는가.

이렇게 한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을 보란듯이 열어제낀 이곳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다음영농공정에서도 그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하여 농장은 올해 알곡생산계획을 완수하였으며 결산분배도 군적으로 제일먼저 진행하였다.

해마다 수매계획을 미달하는것을 어쩔수 없는것으로 여기던 농장원들이 로적가리를 산같이 쌓아놓고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풍년가》의 노래를 부르던 그날 이곳 일군들과 초급일군들은 모내기철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나날이 없었다면!

그렇다.당결정은 채택하는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집행해야 함을 뼈속깊이 절감한 그 나날이 있었기에 농장이 단 한해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던것이다.

본사기자 김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