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로동신문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상자들

2024.11.23. 《로동신문》 4면


주은녀녀성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여깁니다.》

강원도 원산시 관영동에 사는 64살의 주은녀녀성은 고난의 시기부터 오늘까지 101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 키워 조국앞에 떳떳하게 내세운 어머니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사실 저는 자기 아픔밖에 모르는 녀자였습니다.》

그는 한창나이에 뜻밖의 일로 두 자식을 잃게 되였다.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차츰 날이 흐르자 그는 일찌기 세상을 떠난 시누이의 자식들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 병사가 제대되면서 그 애들을 고향으로 데리고갔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온밤 잠들수 없었다.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지만 부모잃은 아이들을 선뜻 맡아안은 그 병사앞에 자신을 세워볼수록 한가정의 아픔때문에 나약하게 주저앉은 자신이 못내 부끄러웠다.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당원답게 살자.나라를 먼저 생각하자.

하여 그는 부모잃은 수십명의 아이들을 품어안게 되였다.

그가 데려온 아이들속에는 병을 앓는 애들도 있었다.그들을 안고 마을에 들어서던 날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고 혀를 찼다.그때 그는 애들을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자기가 힘들면 그만큼 나라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 않겠는가고.

단출했던 한가정살림이 갑자기 대식솔로 불어나니 부족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때로 이웃들이 해당 기관의 도움을 좀 받는것이 어떤가고 권유할 때에도 그는 응하지 않았다.나라에 손을 내밀며 짐이 될바에야 무엇때문에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키우겠는가.그는 더욱 이악하고 깐지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늘 일감에 묻혀 살았지만 그는 아이들의 학습준비와 숙제검열만은 미룬적이 없었다.마을이 들썩하게 오락회를 마친 저녁이면 아이들은 경쟁도표앞에서 하루를 총화지으며 일기를 썼다.

그속에는 금수산태양궁전 수목원에 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심으며 다진 결의도 있었고 성의껏 공연을 준비해가지고 건설장의 인민군군인들을 찾아가던 기쁨도 있었으며 어머니가 바라던대로 최우등생이 되였다는 자랑도 있었다.아이들을 모두 나라의 끌끌한 기둥감으로 키우는것은 주은녀녀성이 스스로 받아안은 당적분공과도 같은것이였다.

제 피줄도 아닌 수많은 자식들을 한식솔로 만들며 그는 얼마나 많은 속을 태웠을것인가.

주은녀녀성의 막내딸이 생일을 맞는 어느날이였다.문득 그 어린것에게 14살 난 친오빠가 엉뚱하게 말했다.이번 생일은 자기가 쇠여주겠다고.

《엄만 우리보다 남의 아이들을 더 고와해.이제부턴 내가 너를 돌봐줄게.》

철부지아들애의 그 말을 들은 주은녀녀성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겠는가.데려온 아이들을 남 못지 않게 내세우기 위해 늘 마음을 쓰면서도 자기의 자식들에게는 변변한 생일상을 차려준적이 별로 없었던것이다.때로는 친자식에게 먼저 아픈 매를 든적도 있었다.자기가 친아들이 맞긴 맞는가고 울음을 터치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주은녀녀성이 한 말은 무엇이였던가.

《너야 친부모가 있지 않니.부모잃은 애들이 더 활짝 웃고 그늘없이 자라야 할게 아니냐.》

바로 이것이 좋은 날에나 어려운 날에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101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온 주은녀녀성의 변심없는 애국지심이다.

누리는 삶보다 바치는 삶이 더 값있다는것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산모범으로 가르친 주은녀녀성을 우리 당은 공산주의어머니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 조향선

 

리순희녀성

 

며칠전에 진행된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여모임에서는 사리원시 혁신동에서 살고있는 리순희녀성의 토론이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남편의 몫까지 합쳐 4명의 아들을 어엿하게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우고 자식들이 당의 믿음직한 전사가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준 그의 토론을 들으며 사람들은 어머니의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갓 시집온 그에게 군관인 남편 장병섭동무는 늘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끌끌한 병사감들을 많이 낳아키우자고.

그러나 그는 남편이 가슴속에 어떤 고결한 지향을 안고 사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사이에 두 아들이 태여나게 되였다.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아들들에 대한 남편의 요구성은 지나칠 정도로 높았다.

이른새벽 꿈나라에 가있어야 할 자식들을 깨워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아침운동을 시켰고 저녁에도 육체훈련을 하게 하였다.그리고 겨울이면 아침마다 자식들을 앞세우고 눈덮인 산길을 달리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그렇게 고생시키자고 아들들을 바랐는가고 하는 그에게 남편이 한 말은 무엇이였던가.

나라를 잃은탓에 소작살이에 등이 휘였던 아버지의 지난날을 다시는 되풀이할수 없기에 군관이 되였고 자식들도 그길에 내세우려 한다고.

그제서야 리순희녀성은 남편의 심정을 알게 되였다.

그것은 조국보위에 참된 애국이 있다는 숭고한 자각, 대를 이어 나라를 지키는 길에서 삶의 보람도, 가정의 행복도 찾으려는 고결한 열망이였다.하기에 리순희녀성은 아들쌍둥이를 낳은 후 그토록 기뻐하는 남편을 보며 앞으로 자식들을 훌륭한 총대감으로 키워 어머니의 본분을 다해갈 마음속결심을 굳게 다지였다.

그때부터 그는 이른아침이면 자식들과 함께 사적비에 대한 관리사업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였고 학습경쟁도표에도 비행기나 배와 같은 그림들을 붙여놓군 하였다.

당의 은정에 의해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하던 쌍둥이아들들이 방학기간에 집에 왔을 때였다.오래간만에 어머니를 만나게 될 기쁨에 겨워 서둘러 집문을 열던 그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어머니가 원군사업으로 밤낮없이 일하다가 몸져누워있었던것이다.

손가락마다 헝겊오리가 매여져있는 리순희녀성의 터갈라진 손을 쓰다듬으며 자식들이 다시는 무리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을 때 그가 한 말은 얼마나 뜨거웠던가.이 어머니를 진실로 생각한다면 심신을 단련하여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병사가 되여야 한다고.

이런 그였기에 다음날 몸이 불편한 속에서도 자식들을 이끌고 건설장에 찾아가 헌신의 구슬땀을 바치면서 애국의 마음을 더 깊이 심어줄수 있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소원은 자식들을 잘 키우는것이고 어머니의 기쁨은 자식들이 조국앞에 제구실을 다하는데 있다.하물며 4명의 아들들을 끌끌한 군관으로, 병사로 키워가는 락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하기에 자식들이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면 그는 크나큰 행복감에 휩싸여있었다.

당의 사랑과 믿음속에 공산주의어머니의 값높은 영예를 지닌 그의 삶은 말해주고있다.

최대의 애국인 조국보위의 길에 자식들을 내세우고 그들이 당에 기쁨을 드리는 훌륭한 군인이 되도록 열과 정을 다해 이끌어주는데 어머니의 가장 큰 행복이 있다는것을.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