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6. 《로동신문》 4면
서윤옥녀성
《녀성들이 없으면 가정도 사회도 나아가서 조국의 미래도 있을수 없습니다.》
개성시 성균관동에 사는 서윤옥녀성은 50여년전 처녀시절부터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키운 쉽지 않은 어머니이다.
함경남도의 한 광산에서 그가 처녀혁신자로 이름떨치고있던 어느날이였다.한창 출근길을 다그치고있는데 낯모를 한 소년이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누나의 사진이 광산속보판에 붙어있는것을 본 기억이 나서 그런다고 하는것이였다.알고보니 그 소년은 뜻밖의 일로 부모를 잃었는데 먼 친척을 찾아 광산마을에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던 참이였다.사연을 알게 되니 선뜻 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일찌기 부모를 잃고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고있던 그는 소년에게 불쑥 물었다.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살지 않겠니?》
그러자 소년은 무작정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이렇게 되여 서윤옥녀성은 16살에 처녀어머니가 되였다.그로부터 또 얼마후에는 함께 일하다가 순직한 광부의 자식들까지 품어안았다.
애어린 처녀의 몸으로 자기 동생들까지 다섯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속에서도 그는 온 광산이 다 아는 혁신자가 되였다.20대 꽃나이에 그는 영광스럽게도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아이들에게 바치는 그의 헌신과 사랑은 더욱 지극해졌다.그 손길에 받들려 아이들은 모두 조국을 지키는 초병이 되였다.그 나날에 군관의 안해가 된 그는 애기어머니가 되기 전에 먼저 병사들의 어머니가 되였다.
고난의 시기에 부모잃은 8명의 아이들을 또다시 품어안은 그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하지만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집의 쌀 한줌이라도 보태주고서야 발편잠을 자군 하는 그의 성정은 변함이 없었다.언제인가 그가 데려다키우는 한 애가 우리 살림도 넉넉치 못한데 왜 남을 도와주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남의 아픔을 같이하고 남의 어려움을 맞들어줄줄 알아야 인간이란다.》
서윤옥녀성의 그 참되고 깨끗한 진심은 그대로 아이들의 성품으로, 애국의 자양분으로 되였다.언제부터인가 그의 가정에는 절약함들이 생겨났다.종이 한장도, 쌀 한숟가락도, 파철 한토막도 다 절약함에 들어갔다.그 애국의 마음들은 그대로 모이고 합쳐져 원군길에 바쳐졌다.
수십년세월 한점 사심도 없이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키우며 사회주의대가정에 밝은 웃음과 행복을 더해준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라를 받들고 위하는 마음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오늘 어디서나 고지식하고 성실하게 자기 초소를 지켜가고있다.
얼마전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수여받은 서윤옥녀성은 수많은 자식들과 자손들이 안겨주는 축하의 꽃다발을 한가득 받아안았다.나어린 처녀시절에 벌써 부모잃은 아이들의 어머니구실을 하느라 화장 한번 제대로 못하고 새 양말 한번 신어볼새 없이 누구보다 고생많았던 서윤옥녀성, 그에게 술을 정히 부어주며 그들은 눈물에 젖어 격정을 터쳤다.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본사기자 조향선
김춘녀녀성
금야군 읍에서 살고있는 김춘녀녀성의 맏아들 전광남동무는 훈련도중 불의의 정황속에서 혁명동지를 구원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공화국영웅이다.그의 둘째아들 전광렬동무도 조국수호의 전초선에서 군사복무의 나날을 충성과 애국으로 빛내인 영예군인이다.
나라의 장한 아들들로 자라난 그 모습들을 보며 김춘녀녀성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결같이 말하고있다.대끝에서 대가 나온다고 훌륭한 가정교양을 받은 자식들이 달리는 될수 없을것이라고.
지금도 김춘녀녀성이 맏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길 때마다 펼쳐보군 하는 일기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 국어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우리에게 〈애국자〉라는 단어를 가지고 문장짓기를 하라고 하였다.나는 온 나라에 소문난 영웅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펜을 놀리였다.그런데 나의 학습장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이 애국자란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보건말건 묵묵히 두줄기 궤도를 지켜가는 동무의 부모님도 애국자라고 말하는것이였다.멀리서만 찾아보던 애국자가 우리
김춘녀녀성의 자식들은 이렇듯 부모의 모습에서 애국자의 모습을 보았고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그가 남편과 함께 어느한 철길소대에서 일하던 수십년전에 있은 일이다.그때로 말하면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시기였다.하루는 밤이 퍽 깊어 집에 들어온 남편이 한동안 수저를 들지 못하고 상념에 잠겨있었다.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는 김춘녀녀성에게 그는 생활상어려움으로 일터에 나오는 사람들이 적어지는것이 못내 가슴아프다고 하는것이였다.
다음날 그는 남편에게 그 사람들이 맡은 철길구간까지 자기가 맡아안을 결심을 터놓았다.사실 애어린 자식들을 두고있는 가정부인이 그런 결심을 내린다는것이 말처럼 헐치 않았다.그러나 자신보다 나라일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만이 한생을 값있게 살수 있다는 고결한 지향을 지닌 그였기에 남들보다 두곱, 세곱으로 애국의 구슬땀을 바칠수 있은것이다.
그렇듯 누가 보건말건 두줄기 궤도를 위해 자신을 바쳐온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자식들의 마음속에 사람이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없이 가르쳐주었다.하기에 자식들은 짬시간마다 철길에 나가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면서 철길을 떠받드는 침목과도 같이 조국을 받드는 뿌리로 살려는 마음을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자식들이 입대하기 전날 밤에도 김춘녀녀성은 그들과 함께 철길에서 새날을 맞았다.부모의 량심의 땀방울이 슴배인 레루며 침목을 쓸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는 그들에게 김춘녀녀성은 말했다.나라에 필요한 일이라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는 사람만이 조국을 위하여 한몸 주저없이 내대는 영웅이 될수 있다고.
그 말의 참뜻을 늘 가슴깊이 간직하고 군사복무의 나날을 충성으로 빛내여왔기에 그의 자식들은 조국이 자랑하는 장한 아들들로 될수 있은것이다.
그렇듯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자식들에게 참된 애국충정을 가르쳐준 김춘녀녀성에게 우리 당은 공산주의어머니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