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로동신문》 4면
리영혜녀성
《사람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할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자식들을 그처럼 훌륭히 키울수 있었는가?
평천구역 미래동에서 살고있는 리영혜녀성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물음을 자주 받군 한다.
자식을 낳아키우는 녀성이라면 아마도 그런 물음을 받을 때가 제일 행복할것이다.
그의 두 아들은
가정의 더없는 자랑으로 대견하게 자란 자식들을 생각할 때면 리영혜녀성은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한켠으로 걱정도 없지 않다.한것은 자식들이 이룩한 성과와 사람들의 칭찬에 들떠 잠시나마 당과 국가의 은덕을 잊을가봐서이다.그래서 그는 자식들에게 은혜를 알고 도리가 있어 인간이라고, 너희들을 대학공부까지 시켜 오늘과 같은 영광의 절정에 내세워준 당과 국가의 고마움을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외우군 한다.
그의 자식들도 남들과 꼭같이 이 땅에 태여난 첫날부터 당과 국가의 보살핌속에서 근심걱정이란 말을 모르고 자랐다.
그럴수록 리영혜녀성은 자식들이 당과 국가의 은덕을 잘 알고 언제나 잊지 않도록 교양하는것이 어머니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명절날과 기쁜 일이 생기면 의례히 자식들과 함께 만수대언덕을 찾군 하였다.그리고 자본주의나라 병원들과 학교들에서 치료비와 학비가 얼마나 되며 우리가 국가로부터 무료로 받은 이런 살림집을 마련하자면 얼마나 엄청난 자금이 드는가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학교로 가는 자식들에게 나라에서 준 교복을 정히 입어야 한다고 매일이다싶이 이르군 하였다.
나라가 고난을 이겨내던 시기에도 변함없이 학교로, 대학으로 가는 자식들에게 그는 당과 조국이 없이는 우리 가정의 행복이 있을수 없다고,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는것이 바로 고마운 당과 조국을 받드는 길이라고 당부하군 했다.
어느덧 김책공업종합대학 박사원을 졸업한 맏아들과 둘째아들은 당의 은덕에 모든것을 다 바쳐 보답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를 명심하고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지난해 리영혜녀성은 우리 당의 은정속에 진행된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였다.
《은혜를 갚으려면 멀었는데 또 이렇게 은혜를 입었구나.》
어머니가 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자식들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날 리영혜녀성과 자식들은 거듭거듭 베풀어지는 당의 은덕에 한생토록 보답해갈 불같은 마음을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교양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리영혜녀성처럼 자식들의 가슴속에 받아안은 당과 국가의 은덕을 순간도 잊지 않는 참된 의리심을 심어주는것이다.그럴 때만이 자식들을 사상적으로 건전하고 도덕의리적으로 순결한 애국충신들로 키울수 있다.
본사기자 조경철
문광녀녀성
안악군 패엽농장 농장원 문광녀녀성이 자식들에게 늘 외우는 말이 있다.
우리 가정은 당원가정이다.그러니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서야 한다.
늘 그런 자각을 가슴에 안고 살기에 그는 해마다 맡겨진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면서 자식들모두를 훌륭히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세울수 있었다.사실 네 자식을 가진 녀성의 몸으로 해마다 다수확을 이룩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지력을 높이기 위해 거름원천을 찾아다니다가 늦게 들어온 밤에도 장난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든 어린 자식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는 또 밤새 덞어진 아이들의 옷을 빨아야 했다.하루종일 장난세찬 사내애들의 뒤거두매를 해주자고 해도 미처 손이 따라서지 않을 때가 많은 그였지만 그는 마을의 첫세대 당원들중의 한사람이였던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보며 언제한번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전에 그는 자기의 할머니를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녀성으로 알고있었다.그러던 어느날 리의 연혁소개실에서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녀성의 몸으로 고향마을을 지켜 빨찌산부대에서 싸웠을뿐 아니라 전선원호미헌납운동에도 앞장섰다는 할머니의 투쟁내용을 알게 된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집으로 돌아온 그가 할머니의 사진이 연혁소개실에 있더라고, 어째서 자기에게는 그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해주지 않았는가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그게 무슨 큰일인가고, 그때는 다 그렇게 싸웠다고.
그제서야 그는 어째서 할머니가 군대에 나가는 자기에게 많고많은 당부가운데서도 꼭 당원이 되여 돌아오라고 이야기했는지 다소나마 깨닫게 되였다.농장의 첫 세대 당원의 후손답게 살리라 결심한 그는 뒤떨어졌던 분조를 맡아 짧은 기간에 추켜세웠고 그후에는 작업반의 당세포비서로 사업하면서 자신의 이신작칙으로 농장원들을 이끌었다.뿐만아니라 그는 당에서 좋다고 하는 농사방법은 무엇이나 다 자기의 포전에 제일먼저 받아들이였다.같은 포전에서도 구획을 지어 서로 다른 재배방법으로 농사짓는 그의 포전을 보고 사람들은 늘 《시험포전》이라고 이야기하군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찌 알수 있었으랴.그 《시험포전》들이 자식들이 다 잠든 뒤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을 밤새워 탐독하며 만들어놓은 결과물인줄.
언제인가 자식들이 그에게 어머니는 작업반기술원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밤을 새워 학습하는가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당원은 모든 면에서 앞장에 서야 한다고, 어려운 일이 나서도 앞장에 서야 하고 과학기술을 배우는데서도 다른 사람들의 앞장에 서야 한다고.
그는 한생을 이렇게 살아왔다.한가정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농업전선을 지켜선 제대군인당원이라는 자각은 그를 농장이 자랑하는 다수확자로, 농사와 관련해서는 막힘이 없는 《박사》로 만들었다.이런 어머니의 품에서 어찌 훌륭한 자식이 자라지 않을수 있으랴.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있는것보다 일하는것을 더 좋아한다고 푸념처럼 외우던 자식들이 어엿이 자라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날에는 한결같이 부모처럼 꼭 당원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다지고 집뜨락을 나섰다.그 맹세를 지켜 군사복무를 마친 맏이가 벌써 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농장벌을 가꿔가고있으며 세 자식들도 초소를 굳건히 지켜가고있다.
우리 녀성들이 당원의 본분, 공민적자각을 안고 강직하고 대바르게 살며 일할 때만이 사람들 누구나
본사기자 김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