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위대한 조국이 있어 가슴펴고 당당히 산다
총련 동포의 체험담중에서

2024.12.1.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와 애국으로 자랑높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력사는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찬 우리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광명한 래일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흔히 인생의 황혼기에는 추억에 산다고들 한다.재일본조선상공련합회 효고현본부 고문 전재홍동포도 그런 시기에 살고있다.그의 뇌리에는 날마다 가지가지의 추억이 갈마들군 한다.

근 한세기를 살아오면서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암흑의 세월과 조국해방후 애국운동의 전 력사를 체험한 그로서는 추억되는것이 많다.

먼저 떠오르는것이 일본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의 등에 업혀 현해탄을 건너가던 때의 일이다.그때 그는 5살 나던 철부지였다.

사품치는 검푸른 바다를 배전에서 내려다보며 공포에 질리였던 애어린 소년은 이역에서 더 큰 무서움을 느끼였다.아버지가 있다는 곳에 가보니 일제의 군사기지건설에 끌려온 숱한 조선사람들이 고역을 치르고있었던것이다.그들의 처지는 두말할것없이 매우 비참하였다.그야말로 노예였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의 수는 수백명에 불과하였다.그런데 1945년 일제패망당시에는 그 수가 무려 240만명에 달하였다.그 절대다수가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였다.당시 《침목 한개에 조선사람 한명》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죽음의 유령이 배회하는 살인고역장들에서 그들의 생명은 파리목숨이나 같았다.바로 그런 곳에서 그의 유년시절이 흘러갔다.

8살 나던 해에 재홍은 학교에 입학하였다.일본소학교였다.입학하던 날 그는 전재홍이라는 이름으로 학적부에 등록하였다.그런데 그것이 문제로 되였다.일본학생들은 그를 첫날부터 속된 별명으로 부르며 따돌리였다.

어느날 력사수업시간이였다.그날의 수업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사에 대한것이였다.그날 재홍은 아연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만한 일본인교원이 의기양양하여 임진년의 조선침략을 조선정벌이라고 뇌까린것이다.분격이 치밀어올랐다.

그런데 교실에 있던 일본학생들은 재홍을 흘끔흘끔 보며 키드득거리는것이였다.로골적인 조롱이였다.구석구석에서 그를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주위의 항시적인 압박에도 주눅이 들지 않던 재홍이 불끈하여 나직이 내뱉았다.

《너희들 왜 그래?》

그러자 일본아이들은 더 승이 나서 떠들어댔다.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일본인교원은 무작정 재홍을 꾸짖는것이였다.

《너는 나쁜 놈이다.수업규률을 문란시키였다.당장 나가라.》

재홍은 억울하게 교실에서 쫓겨났다.식민지소년이 당할수밖에 없는 숙명이였다.그는 운동장에서 한참이나 씩씩거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교실에서 그 무엇인가 없어지면 모든 혐의는 그에게 들씌워졌다.학교에서의 매일매일이 차별과 박해의 련속이였다.전재홍로인에게 있어서 소학교시절의 추억은 모두 이런것들이다.그야말로 악몽같은 추억이다.

마침내 가증스러운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였다.

이역의 동포사회는 환희로 설레이였다.당시 재홍이 사는 동네에는 조선사람이 수천명이나 살고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패망하였어도 조선민족에 대한 적의와 멸시는 여전하였다.어느날 거리에서 소방대의 화재진압훈련이 진행되였다.

그런데 소방대원이라고 하는자들은 그의 집지붕에 마구 물을 뿌리는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짓들이냐?》

재홍의 아버지가 분격하여 소리치자 일본소방대것들은 히히닥거리며 달아났다.조선사람의 집이니까 아무렇게 다루어도 문제될것이 없다는 심보였다.

국어강습소에 다니면서 전재홍은 강한 민족의식을 키우게 되였다.강습소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 우리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배우고있었다.당시 그 누구라 할것없이 동포들의 생활이 가난하고 비참한것으로 하여 교사라는것은 비바람이 스며드는 창고같은 건물들이였고 책걸상들과 칠판 등 교구비품들도 산지사방에서 모아온 낡은것들이였다.하지만 누구도 락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새 조국건설의 억센 기둥, 동포사회의 미더운 역군으로 자라나려는것이 그들모두의 한결같은 의지였다.

우리가 어째서 망국노로 되였댔는가.왜 이역에까지 끌려와 수난을 겪어야 했는가.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두가 열정적인 토론을 벌리였다.

거치른 이역의 찬바람, 궂은 눈비를 맞으며 천대받던 불쌍한 식민지소년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하시고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그때부터 애국의 화원에 인생의 씨앗을 묻게 되였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창건은 말그대로 운명전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우리도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신 공화국의 주인이다!

이끌어줄 수령이 없고 품어줄 나라가 없어 얼음처럼 차거운 일본땅에서 설음의 눈물을 뿌리던 재일동포들은 저저마다 거리에 떨쳐나와 목청껏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그속에는 소년 전재홍도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늘 조선사람이라는 긍지를 안고 살아왔다.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존엄높은 자주의 나라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위용떨치는 우리 공화국은 전재홍동포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바람세찬 이역에서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애국위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게 한 억척의 지지대였다.

조국의 자랑찬 소식을 들으며 절세위인들을 높이 모시고 주체의 한길에서 민족의 존엄을 떨쳐가는 어머니조국의 드높은 숨결을 느끼며 그의 가슴은 얼마나 벅차올랐던가.

일본반동들이 총련탄압에 광분하고 조선민족차별책동에 악랄하게 매여달려도 그의 배심은 든든하였다.

(조선사람으로 태여난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공화국공민으로 사는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너희들이 아무리 뱁새눈으로 노려보며 발악해도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조국을 빼앗지 못한다.민족의 넋을 거세하지 못한다.나는 조선사람이다.조선사람답게 살겠다.)

그렇게 그는 수십년간을 살아왔다.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의 특출한 위인적풍모와 탁월한 정치실력에 의하여 그 존엄과 위력이 민족사상 최상의 경지에서 떨쳐지고 세기를 주름잡는 비상한 속도로 제일강국으로 솟구쳐오르는 조국의 모습은 전재홍동포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에게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끝없는 긍지와 함께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있다.

망국의 그 세월 남들처럼 크지도 세지도 못하다고 한탄하던 약소민족의 설음은 영원히 옛말로 되였다.력사의 방향타를 억세게 틀어쥐고나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우러르며 재일동포들은 민족의 륭성번영과 총련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고있다.이처럼 위대한 령도자, 존엄높은 조국을 받들어 애국위업에 힘차게 떨쳐나설 의지를 더욱 굳히고있다.

오늘의 벅찬 현실을 안아볼수록 전재홍동포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고있다.

오래동안 학교교육회 회장, 지역상공회 회장, 총련지부위원장으로 사업한 총련의 1세 동포는 오늘도 후대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하군 한다.

《수난의 력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애국을 해야 한다.조국을 옹위해야 한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