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4. 《로동신문》 4면
허근숙녀성
《조국이 없으면 녀성들과 후대들의 참된 삶과 단란한 가정도 행복한 생활도 없습니다.》
대홍단군 서두리에서 살고있는 허근숙녀성을 보고 마을사람들은 강의한 녀성이라고 부른다.남달리 체소하고 눈물도 많아 젊은 시절에는 남편에게서 울보라고도 불리웠던 녀성, 하다면 과연 무엇이 그를 강의한 녀성, 공산주의어머니로 되게 하였는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그는 군대에 나간 맏아들이 군사임무수행중 희생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자식들앞에서는 울지 말자고 몇번이나 다짐했지만 자꾸만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한밤을 꼬박 지새운 그는 다음날 아무런 내색도 없이 농장에 나가 일손을 잡았다.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그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이제라도 희생된 아들의 부대에 가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했을 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희생된 아들의 몫까지 합쳐 더 많은 일을 해야 아들앞에 떳떳하지 않겠는가고.
이러한 그였기에 아들의 애국렬사증을 받은 그날에도 울먹이는 자식들앞에서 울지들 말라고, 너희들도 형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한가지 습관이 생겼다.기쁘고 힘겨울 때마다 애국렬사증을 바라보며 희생된 아들앞에 떳떳하게 살고있는가를 돌이켜보는것이였다.
그럴수록 맏이가 섰던 초소가 비여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하여 그는 맏이가 섰던 초소에 둘째아들을 세우기로 결심했다.당시 둘째아들은 신병으로 앓고있었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희생된 한 병사의 어머니이기 전에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이겨내며 총대의 귀중함을 너무도 깊이 새긴 이 땅의 공민이라는 자각을 안고 아들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마침내 병을 털고일어나 둘째아들도 조국보위초소에 섰다.우리 부대는
그때부터 그는 조국보위에 모든것을 다 바친 자식들앞에 떳떳하기 위해 원군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셋째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였을 때였다.남달리 축구를 잘하는 셋째아들을 두고 사람들은 타고난 축구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는가.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에게 이미전부터 형님들의 뒤를 이어 조국보위초소에 달려나가야 한다고 거듭 일러왔지만 축구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앞에서 솔직히 망설임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셋째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자기도 형님들처럼 군대에 나가겠다고.
자식을 잃은 아픔을 홀로 묵새기며 원군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면서 자란 아들들이기에 셋째가 조국보위초소로 떠난 얼마후에는 넷째도 혁명의 군복을 입었다.
오로지 조국을 위해 자식들을 총잡은 군인들로 키우고 오랜 세월 원군길을 이어간 그를 나라에서는 제4차,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 대표로, 지난해에는 건군절경축행사 특별대표로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 김일경
강화숙녀성
만포시 고개동에서 살고있는 강화숙녀성은 오래동안 상업봉사부문에서 일하였다.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우리 상점책임자, 우리 마을의 주부라고 정담아 불렀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들의 뇌리에 사회와 집단의 존경속에 떠받들리우는 삶이야말로 가장 값있고 보람있는것임을 깊이 새겨주었다.
강화숙녀성은 가정에 파묻혀있는 시간보다 상점과 주민지구, 공장과 농촌에 나가있는 때가 더 많았다.그는 하루일이 끝나면 시안의 공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일군들과 로동자들에게 주민들의 상품수요를 알려주고 생산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로 주민들이 좋아하는 제품들을 생산할수 있는 방도적문제들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상점으로 한 청년이 들어섰다.그는 다음날 이동작업을 나가야 한다면서 신발을 요구했다.그런데 상점에는 그 청년이 요구하는 호수의 신발이 없었다.
강화숙녀성은 그의 집주소를 물어보고는 수십리 밤길을 달려가 끝내 그 청년이 요구하는 신발을 가지고 돌아왔다.기쁜 마음으로 걸음을 다그치던 그가 마을어구에 들어섰을 때였다.불쑥 앞쪽에서 두개의 전지불빛이 마주왔다.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다 못해 상점에 들려 사연을 알게 된 남편과 맏아들이였다.
자기가 요구했던 신발을 받아안고 너무 기뻐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맏아들은 문득 이렇게 물었다.사람들이 어머니를 좋아하는것은 이렇게 심부름을 잘해주어서인가고.
강화숙녀성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주었다.사람은 사회와 집단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는데서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그럴 때만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수 있다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는것을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어려서부터 가슴깊이 새겨안은 자식들은 누구나 자기의 본분을 책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그 나날 맏아들은 나라의 국력강화에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강화숙녀성이 70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에 자식들은 집으로 모여왔다.어머니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안겨주고난 맏아들은 문득 품속에서 자기가 수여받은 로력영웅메달을 꺼내여 어머니의 앞가슴에 달아주었다.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간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습을 삶의 거울로 삼고 자랐기에 자기들의 오늘이 있다고 진정을 터놓았다.그러는 자식들에게 강화숙녀성은 이렇게 말했다.당과 조국을 위해 언제나 성실히 일하라고, 그래야만이 사회와 집단의 값높은 평가속에 살수 있다고.
이런 어머니의 슬하에서 어찌 훌륭한 자식들이 성장하지 않을수 있으랴.
본사기자 조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