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6. 《로동신문》 4면
곽금숙녀성
《녀성들이 없으면 가정도 사회도 나아가서 조국의 미래도 있을수 없습니다.》
린산군 대촌리에서 살고있는 곽금숙녀성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남편과 함께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찾아하면서도 다섯 자식을 훌륭히 키워 인민군대에 내보낸 공산주의어머니이다.
어린시절 아이들의 눈에 비낀 어머니의 모습은 농장일이 바쁜 속에서도
언제인가 심하게 앓는 속에서도 새끼메기들이 자꾸 죽어간다고 걱정하는 남편의 말을 듣고 그 해결책을 찾아 깊은 밤 집을 나서는 그를 보며 자식들은 어머니는 양어작업반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극성인가고 안타까이 물었다.
그때 그는 자식들에게
그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지난 4월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온 막내딸의 모습을 보는 곽금숙녀성의 생각은 깊어졌다.인물도 잘나고 남달리 노래도 잘하는 막내딸의 장래문제때문이였다.
그런데 문득 딸이 군원료기지사업소에서 일하겠다는것이 아닌가.집안의 막내로 늘 사랑만 받으며 자란 딸의 뜻밖의 말을 들었을 때 곽금숙녀성의 마음속에는 대견함보다도 딸이 꽤 농사일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그에게 막내딸은 이렇게 말했다.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당이 바라는 곳에 자기를 세울줄 아는것이 공민의 마땅한 도리라고 하지 않았는가고.
곽금숙녀성은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어머니에게 있어서 부모의 뜻을 이어 조국이 부르는 곳에서 인생을 빛내여가려는 숭고한 지향을 안은 자식들의 모습을 볼 때처럼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당에서는 자식들을 훌륭히 키운 그를 온 나라가 다 알도록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 김일경
백정숙녀성
은정구역 광명동에서 살고있는 백정숙녀성의 살림방벽면에는 두개의 표창장이 정히 모셔져있다.하나는 국가과학원 실장이였던 그의 남편이 받은
그의 시아버지 김지정선생은 나라의 수학발전을 위해 뚜렷한 자욱을 남긴 원사, 교수였다.
해방후 근로인민의 첫 대학인
박사인 그의 남편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어 현실에서 절실한 해결을 기다리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이런 훌륭한 가정에서 애국의 대가 꿋꿋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백정숙녀성은 자식들에 대한 교양을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평성예술학원에서 예술인재육성사업을 진행하는 바쁜 속에서도 그는 자식들이 학습과 조직생활을 잘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었다.
자식들을 다방면적으로 준비된 인재로 키우기 위해 체육과 음악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였고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아침에도 자식들이 달리기를 번지지 않도록 엄하게 요구하였다.
부모가 애국의 한길만을 걸었다고 하여 자식들이 절로 그길에 들어서는것은 아니였다.맏딸이 중학교를 졸업할무렵이였다.백정숙녀성은 맏딸이 공과대학에 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애는 다른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것이였다.그러면서 늘 집을 떠나 연구사업에만 몰두하면서 가정에 무관심한
《너의 할아버지와
이날 백정숙녀성은 자식들에게 할아버지와
그후에도 그는 자식들이 론문집필을 한다고 할 때마다 현실에 필요한 연구종자를 잡고 써야 한다고, 나라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론문은 아무리 많이 써도 빈종이장에 불과하다고 일깨워주군 하였다.
그처럼 대바르고 강직한 어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자랐기에 그의 아들은 경제적효과성이 큰 가치있는 연구성과를 이룩하고
어머니들의 신념이 굳세면 온 나라 아들딸들의 신념이 굳세지고 조국이 강해진다.우리의 어머니들이 백정숙녀성처럼 자식들이 충성과 애국으로 향한 인생길을 헛디딜세라 바로잡아주고 고무해주며 마음속에 신념의 기둥을 억척으로 세워줄 때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혁명의 대는 끄떡없이 이어지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조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