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로동신문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상자들

2024.12.7. 《로동신문》 4면


홍금란녀성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녀성들이 없으면 가정도 사회도 나아가서 조국의 미래도 있을수 없습니다.》

운전군 보석농장 10일유치원 원장 홍금란녀성은 자식 5명을 훌륭히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세웠으며 오랜 세월 원군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쳐온 쉽지 않은 어머니이다.

제대되여 스스로 농장에 뿌리를 내린 그가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면서 네번째 자식을 낳았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어려운 때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하는가 하는 내심에서였다.그런데 그는 몇년후 또다시 다섯번째 자식을 낳았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그가 어이하여 쌀 한줌도 귀했던 고난의 시기에 자식들을 많이 낳아키울 결심을 하였는지 알수 없었다.

전쟁로병인 그의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였다.오늘은 비록 어렵지만 잘살 날이 꼭 온다고, 나라만 굳건하면 무서울것도 두려울것도 없다고.

제대군인총각과 새 가정을 이루던 날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만나주신 군인가정들처럼 우리 가정도 꼭 훌륭한 군인가정으로 만들겠다고.

그런데 처음 낳은 자식이 딸일줄 어이 알았으랴.속상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에게 전쟁로병인 아버지는 이렇게 힘을 주었다.수류탄을 안고 적땅크를 까부신 조순옥영웅도 녀자였다고.

자식들이 한걸음이라도 헛디딜세라 다잡아 이끌어주는 어머니의 손길은 날이 갈수록 다심해졌다.

어느해인가 그가 신병으로 앓을 때였다.뜻밖에도 학교로 간줄 알았던 맏딸이 두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섰다.온몸이 물참봉이 된 그들의 손에는 붕어 몇마리가 들려있었다.입맛을 잃고 몇끼째 때식을 건늬는 어머니를 위해 어린것들이 제손으로 잡아온 물고기였다.철부지라고만 여겼던 애들의 눈물겨운 지성에 그의 가슴은 뭉클해졌다.하지만 그는 엄하게 말하였다.

《어머니랑 같이 선생님을 찾아가서 잘못을 빌자.》

나무가 휜것은 어려서 바로잡고 사람 그른것도 어릴 때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자식교양을 바로하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고 하면서 몹시도 괴로와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자식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그날의 추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맏이는 초소에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 철부지시절을 떠올리군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자식들은 토끼기르기경쟁을 시작하였는데 그렇게 마련된 토끼곰은 건설장의 병사들에게로 보내졌다.그 나날에 키보다 마음이 먼저 자란 자식들은 남먼저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다.그때마다 홍금란녀성은 이렇게 당부하군 했다.

《나라를 지켜 한몸 바치는것보다 더 큰 영예는 없다.그길에 어머니앞에, 나라앞에 떳떳하게 사는 길이 있다.》

오늘도 그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그 당부를 지켜 깨끗한 량심과 의리를 안고 애국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고있다.

본사기자 조향선

 

김정숙녀성

 

대성구역 려명동에서 살고있는 김정숙녀성의 세 아들은 모두 과학자이다.

얼마전 그들은 나라의 국력강화를 위한 길에서 자기들이 받은 명예증서들이 걸려있는 집벽면에 어머니의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함께 걸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바른길만 걷도록 이끌어준 어머니의 수고를 떠나 어떻게 오늘과 같은 성공에 대하여 생각할수 있겠는가고.

하다면 자식들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정, 그것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인가.

김정숙녀성은 1960년대에 당의 은정에 의하여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전쟁때 부모잃은 나를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에서 공부시켜준 고마운 그 사랑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가 대학시절에도, 어느한 공장에서 일할 때에도 늘 가슴속에 품고 산 량심의 물음이였다.하기에 그는 어머니가 된 후 자기의 자식들을 훌륭한 과학자로 키워 하늘같은 그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

언제인가 자식들의 학습정형을 검열하던 그는 점수가 낮은 시험지들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어떻게 하면 자식들의 실력을 높이겠는가를 놓고 고심하던 그는 다음날부터 자기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여러가지 참고서들에 기초하여 수학문제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기사로 일하면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를 해결하느라 늘 바쁜 속에서도 그렇게 문제집까지 자체로 만든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그러다나니 책상머리에서 새날을 맞기가 일쑤였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 불같은 노력에 의하여 마련된 수천문제에 달하는 수학문제집, 진정 그것만 놓고보아도 자식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잘 알수 있는것이다.하기에 자식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가 그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날이였다.

어머니라면 누구나 자식이 공부를 잘하여 높은 실력을 지닌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문제는 그것이 어디에 목적을 두고있는가 하는것이다.

다만 자식의 발전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라를 위해서인가.

여기에 따라 자식들의 성장이 달라진다.하기에 그는 대학에 다니는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군 했다.

너희들은 대학졸업증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나라의 은덕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보답하려는 소중한 애국의 마음, 자식들이 높은 실력으로 조국을 받드는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만을 안고 살았기에 그의 세 아들은 훌륭한 과학연구성과들을 이룩하여 당에 기쁨을 드릴수 있었다.

진정 김정숙녀성이 한생토록 안고 사는 보답의 마음이야말로 자식들이 충성과 애국의 길을 꿋꿋이 이어갈수 있게 하는 고결한 자양분이였다.

본사기자 김학철

 

길확실녀성

 

얼마전 룡성구역 룡성1동의 길확실녀성이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을 수여받고 돌아온 날이였다.

그의 가정에서는 온밤 불이 꺼질줄 몰랐다.

제일처럼 기뻐하며 찾아와 축하해주는 이웃들의 진정도 그렇듯 뜨거울진대 그의 손길아래서 자라난 자식들인 8남매의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자식들의 가슴가슴은 자신들을 고향땅을 지키고 가꾸어가는 참된 주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열과 정을 기울인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길확실녀성은 늘 자식들에게 고향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조국도 사랑할수 없다고 말해주군 하였다.그 말의 참뜻을 새겨주기 위해 그는 자식들과 함께 자주 마을주변에 나무도 같이 심으면서 애국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네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에는 모두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웠다.

초소로 떠나는 자식들의 배낭에 고향의 흙주머니를 넣어주며 그가 한 말은 길지 않았다.

《네가 지켜선 전호뒤에 고향땅이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라.》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떠났던 자식들이 끌끌한 제대병사가 되여 돌아올 때마다 길확실녀성의 마음은 더없이 흐뭇했다.그애들이 고향땅의 래일을 떠받드는 기둥감이 될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식들을 많이 낳아키운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넘쳐났던것이다.

그럴수록 길확실녀성은 다 자란 자식들을 고향의 진정한 주인으로 떳떳이 내세워야 할 자기의 본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언제인가 셋째아들이 어머니에게 젊은 혈기에 들끓는 일터에서 한번 본때있게 일해보고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 길확실녀성은 나서자란 고향을 뜨겁게 사랑할줄 아는 사람만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값높은 위훈을 세울수 있다고 하면서 그가 한걸음도 헛디딤이 없이 바른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한 단위에서 혁신자로 자라난 둘째아들의 어엿한 모습뒤에도 뚝심이 아니라 실력으로 일하는 사람만이 고향땅의 참된 주인이 될수 있다고 하며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도록 떠밀어준 길확실녀성의 남모르는 진정이 깃들어있다.

그 진정이 있어 오늘 그의 자식들은 고향땅에 든든한 삶의 뿌리를 내리고 나라앞에 맡은 본분을 다해가고있다.

자식들의 마음속에 불같은 향토애를 심어주며 애국의 한길로 떠밀어준 그를 당에서는 공산주의어머니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