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7. 《로동신문》 3면
당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여기에 전화의 나날 입당할 때 다진 맹세를 항상 명심하고 실천으로 지켜온 한 선봉투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되는것도 영예이지만 그보다 더 값높은 영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원의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계속 빛내여나가는것입니다.》
김석봉동지가 희천기관구(당시)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자신의 꾸준한 노력으로 기관사로 된것은 1950년 봄이였다.그 이듬해에는 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영광의 그날 그는 성스러운 당기앞에서 이렇게 결의하였다.
《당과 조국을 위하여 더욱 헌신적으로 싸움으로써 당원의 고귀한 칭호를 수호할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그의 결심은 빈말이 아니였다.
1951년 봄 어느날 저녁, 해가 지자 그는 군수물자를 실은 렬차를 몰고 대피하였던 갱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의 렬차는 달리기 시작했다.이때 갑자기 적비행기가 나타나 미친듯이 폭탄을 투하하며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렬차를 급히 대피시켜야만 했다.그는 적기의 폭격속에서도 침착하게 렬차를 후진시키며 다시 갱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그런데 그때는 벌써 뒤따라온 렬차가 갱으로 대피하고있었다.
그러자 김석봉동지는 당황하지 않고 결연히 기관차를 앞으로 내몰았다.
공중에서 발악하는 원쑤들과의 긴장한 투쟁이 벌어졌다.
렬차를 구원해야 한다.얼마나 많은 당원들이 이런 어려운 고비에서 용감히 싸웠는가! 나도 그들처럼 용감히 싸우자!
그의 눈앞에는 바로 한달전 자기의 목숨을 바쳐 군수렬차를 구원한 당원인 김석홍동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렬차는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리여 다음대피소까지 무사히 도착할수 있었다.
그는 가장 곤난하고도 위급한 순간에 용감무쌍한 투쟁으로 군수렬차를 수호하였다.
이렇게 김석봉동지는 전시수송을 보장하던 나날에 30여차량을 구출해내였다.
전쟁시기에 단련되고 세련된 그는 전후에도 수송전선에서 계속 빛나는 로력적위훈을 세웠다.
기관차의 성능을 제고하고 그 수명을 연장하며 증송투쟁에서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일데 대한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김석봉동지는 기관구에서 처음으로 3만km무사고주행운동의 봉화를 들었다.
또한 그는 석탄을 절약하기 위한 사업에서도 선두에 섰다.
그는 사색과 연구를 거듭하여 화물수송을 원만히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석탄을 절약할수 있는 방법을 내놓았다.그의 이 새로운 방법은 전 기관구에 보급되였다.
이와 같은 창발적투쟁으로 김석봉동지는 한해동안에 1만 987t의 화물을 초과견인하면서 220여t의 석탄을 절약하였다.
그는 이렇게 실천적모범을 보여주면서 기관사들과 종업원들을 이끌어 자검자수에 너도나도 떨쳐나서게 하였으며 대중적기술혁신운동에도 적극 참가하게 하여 해마다 화물수송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는데 큰 기여를 하도록 하였다.
그가 결의한 일은 무엇이나 실천되지 않은것이 없었다.
전후 재더미를 가시고 영웅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시위하며 맞이한 당 제3차대회를 계기로 3만km무사고주행을 남먼저 수행하였다.
축하의 꽃다발을 받아안던 그날 김석봉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원의 고귀한 칭호를 간직하고 당과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더욱 헌신할 각오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실천으로 당원의 고귀한 칭호를 수호하겠다는것은 입당할 때 다진 맹세입니다.》
그의 말은 비록 짧아도 당원의 의무를 다해나가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주고있다.
그렇다.
입당할 때 다진 맹세를 항상 명심하고 실천으로 지켜가는 선봉투사가 되자.전세대 당원들처럼.
본사기자 장철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