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로동신문
위대한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반가운 편지

2024.12.9. 《로동신문》 2면


위대한 장군님과 이 땅의 매 가정, 매 사람들사이의 관계는 친부모와 자식들간의 사랑에도 비길수 없는 한없이 뜨거운 혼연일체의 정으로 맺어져있었다.

멀리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차만 보아도 만세를 부르며 달려가고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신 때이면 눈굽을 적시며 가슴속진정을 서슴없이 터놓던 이 나라 인민,

사랑하는 인민을 한품에 안으시고 한없는 은정을 부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자욱마다에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그 얼마나 많이 꽃펴났던가.

2001년 우리 당창건 56돐을 맞던 날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의 제대군인부부인 박용철, 김성녀동무의 가정에는 뜨거운 격정이 차오르는 영광과 행복의 순간이 찾아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회답서한을 그들이 받아안게 되였던것이다.

《좋은 소식 알려주어 반갑습니다.

김정일

2001.10.10》

범안리사람들은 더 말할것 없고 황해북도 아니 온 나라 인민들의 가슴을 그리도 격동시킨 이날의 회답서한을 우리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보내시게 되였는가.

2001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를 현지지도하시였다.

그날도 새벽 3시가 넘도록 제기된 문건들을 다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승용차를 달려 아직 가정주부들도 잠을 깨지 않은 새벽 5시경에 범안리에 들어서시였다.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은 농촌길을 걸으시며 새로 건설한 양어장과 리소재지마을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만면에는 한밤을 지새우신 피로가 순간에 씻겨지고 기쁨의 미소가 넘치였다.

뒤산을 뒤덮은 과일나무숲과 산기슭에 줄지어 늘어선 날아갈듯한 문화주택들, 그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양어장과 강을 가로질러 건설한 발전소…

실로 한폭의 그림같은 사회주의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쁘고 만족하시여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바로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고 사회주의선경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만시름이 풀리신듯 환히 웃으시는 때는 이처럼 인민들이 잘살게 된 희한한 광경을 보시게 되는 시각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고난을 맞받아 준엄한 선군혁명천만리길을 밤낮으로 헤쳐오신것도, 새벽 1시를 초저녁이라 하시며 온갖 로고를 바쳐오신것도 다름아닌 우리 인민의 이런 행복을 지키고 꽃피우시기 위해서였다.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인민입니다, 이런 인민을 위해서라면 잠을 덜 자고 휴식을 못하더라도 더 많이 일하려는것이 나의 결심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위대한 장군님,

인민을 위하시는 그이의 심정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면 그리도 기뻐하시였으랴.

마을어귀에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지은 살림집내부를 어서 돌아보자고 하시며 어느한 제대군인농장원부부의 가정을 찾으시였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을 뜻밖에도 자기 집에서 만나뵙게 된 농장원부부와 아이들은 너무도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군사복무는 어디서 했으며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가, 새집들이는 언제 했으며 아이들은 몇인가, 제대군인들이 농촌의 주인이 되였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고 하시며 세간난 자식의 집에 온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따뜻이 물어주시고 치하도 해주시며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윤기흐르는 가구들과 쓸모있는 가정용품들이 그쯘히 갖추어진 세간살이를 만족하신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부엌으로 내려서시였다.

몸소 부엌에까지 내려서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집주인은 아직 전기로 밥까지 해먹지는 못한다고 나직이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알뜰한 주부의 손길이 느껴지는 부엌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다가 생각깊으신 어조로 여기에 발전소를 건설했으면 응당 그 덕을 보는것이 기본이지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좋은 집에서 전기로 밥까지 해먹으면 얼마나 좋겠소.》

안겨진 사랑과 차례진 행복에 만족만을 느껴오던 그들부부는 아직은 자기들이 바라지도 못하고있던 전기로 밥을 해먹는 문제때문에 근심을 놓지 못하시는 장군님께 황송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우리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를 주면 열백을 더 주고싶은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인민을 하늘로 여기시는 우리 장군님의 사랑의 세계는 이 땅의 천만부모들의 그 모든 사랑에도 비길수 없는 웅심깊은것이였다.

온몸에 흙냄새가 푹 배인 평범한 농민들까지도 전기화된 문화적인 농촌살림집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살게 하시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이며 숭고한 뜻이였다.

그래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농장원의 진정어린 대답을 들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아니요, 전기로 밥까지 지어먹으면 더 좋지 않겠소.》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발전소를 건설한바치고는 효률을 더 높여 집집마다 전기로 밥까지 지어먹게 해주자고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농장원에게 《…전기화가 완전히 실현되여 전기로 밥을 지어먹을수 있게 되면 나한테 편지를 써보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농장원부부는 격정으로 가슴이 높뛰여 무엇이라고 말씀드릴수 없었다.아직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적도 없고 소문난 혁신자도 아닌 자기들이 무엇이길래 이른새벽 몸소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처럼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는것인가.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여 집주변을 둘러보시며 이런데는 남새도 많이 심고 줄당콩도 많이 심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신 후 갓 까나온 새끼오리들을 보시며 집짐승도 많이 키워 고기문제까지 풀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다심한 사랑이 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매지게 늘어선 문화주택마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집주인쪽으로 돌아서시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집에 찾아오면 제집을 얼른 알아 못보겠다고 하시며 매 집에 문패를 꼭 해 달라고 당부하시였다.

친부모도 미처 생각 못할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온 가족을 한품에 안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어버이사랑에 농장원가족과 일군들은 끝없는 감사의 정에 넘쳐있었다.

떠나시기에 앞서 장군님께서는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올리며 떨어지기 섭섭해하는 농장원부부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거듭 이렇게 당부하시였다.

《이제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을 때 나에게 꼭 편지를 하시오.》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가신 때로부터 두달후 범안리의 제대군인농장원부부는 온 마을의 전기난방화가 실현되고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는 기쁨과 감격을 담아 그이께 삼가 편지를 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은정넘친 회답서한을 보내주신데는 이런 뜻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과 평범한 농장원부부사이에 오고간 한통의 편지와 회답서한은 온 나라를 격동시키였다.

력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선혁명은 세기를 이어 절세의 위인께서 창조하신 력사의 재현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해방직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원도 산골의 리계산농민을 친히 만나주시고 문맹을 퇴치한 후 제손으로 자신께 편지를 쓰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푸시였으며 그 하나의 불꽃으로 온 나라의 문맹퇴치를 실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범안리의 한 평범한 농민가정에 보내주신 회답서한도 한점의 불꽃이 되여 온 나라에 휘황한 현실을 안아왔으니 우리 조국의 륭성번영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이런 위대한 혼연일체속에서 이루어지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