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9. 《로동신문》 4면
하루밤사이에 있은 일
얼마전 함흥편직공장 양말제직직장의 작업반장 리충일동무와 반원들은 작업을 마치고 교대를 하던중 다른 작업반에서 로력이 부족해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 상태에서 기대를 인계받아 돌리면 그들의 생산실적이 심히 미달될수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작업반원들은 저저마다 리충일동무에게 이웃작업반을 돕겠다고 제기하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무척 고마와하는 이웃작업반원들을 둘러보며 리충일동무는 말했다.
서로의 힘을 합쳐 생산계획을 초과완수하자고.
그렇게 되여 모두가 한마음을 안고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등을 떠밀다싶이하여 겨우 들여보냈던 작업반의 녀성종업원들이 집에서 성의껏 준비해온 음식들을 들고 작업현장으로 들어섰다.그리고는 기대를 돌리느라 여념이 없는 작업반원들에게 다가가 일손을 거들어주는것이였다.
그렇듯 서로 위해주는 뜨거운 마음을 안고 두 작업반이 하나가 되여 작업에 진입한 결과 마침내 그들은 그날도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그것은 불과 하루밤사이에 있은 일이였다.하지만 그날 밤에 있은 일은 서로 돕고 이끄는 집단주의기풍을 높이 발휘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다시금 깊이 새겨주는 또 하나의 훌륭한 계기로 되였다.
리수연
기숙사생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다.
-평양관광대학에서-
남다른 자랑
다수확작업반으로 농장적으로 소문난 연산군 공포농장 제5작업반원들에게는 자랑이 적지 않다.
그들이 남다른 긍지를 안고 손꼽아가는 자랑중에서도 첫째가는 자랑은 작업반의 모든 성원들이 서로 돕고 이끄는 집단주의정신을 체질화하였다는것이다.
언제인가 작업반에는 생활이 안착되지 못하여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농장원이 있었다.그 일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한 사람은 작업반장이였다.그는 자주 그 농장원의 집에 찾아가 살림살이형편도 친혈육의 심정으로 세심히 알아보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따뜻이 풀어주었다.그리고 우리 농업근로자들에게 베풀어지는 당의 뜨거운 은정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면서 농사군의 본분을 다해나가도록 이끌어주어 그가 실농군으로 자라나게 하였다.
해마다 작업반세대들에 땔감을 보장해주는것을 비롯하여 반원들의 사업과 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자기 일처럼 진심을 다해 도와주는 작업반장의 모범을 따라 집단안에는 서로 돕고 위하는 미풍이 공기처럼 흘러넘쳤다.신병으로 앓는 농장원이 있으면 저마다 건강식품을 마련해가지고 찾아가 정을 기울이고 전승절이면 제대군관들의 가정을 찾아 집안일도 거들어주는것이 어느덧 작업반에서는 례사로운 일로 되였다.
그렇듯 고상한 집단주의기풍을 체질화하였기에 지금도 작업반원들은 다음해 농사차비에 모두가 한마음한뜻으로 떨쳐나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
로선을 바꾼 사연
얼마전에 있은 일이다.
동대원구역병원 구급과의 의료일군들은 의식을 잃은 한 로인을 업고 다급히 들어서는 두명의 젊은 남녀와 여러 사람을 맞이하게 되였다.
누가 보기에도 급병을 만난 어머니를 업고 달려온 혈육같아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는 남남이였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승리동-문흥동로선뻐스가 선교영화관앞에 멎어섰을 때였다.뻐스에서 금방 내린 리현숙로인이 갑자기 심장병이 도져 그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본 평양기계대학 기계생산공학부 4학년 학생 조강석동무는 지체없이 로인을 둘쳐업고 다시 뻐스에 올랐다.차장인 최충심동무와 운전사 윤경호동무도 로인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며 손님들에게 로선을 바꾸어 병원으로 먼저 가자고 량해를 구하였다.손님들도 저마다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 환자부터 살리고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며 맥도 짚어보고 손발도 주물러주며 지성을 다하였다.
얼마후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로인의 눈앞에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비껴들었다.하지만 그들이 자기를 구원해준 은인들이라는것만은 첫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뇌이는 로인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진정을 다 바치는것이 온 사회의 풍조로 되였기에 어디서나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태여나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림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