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7일 화요일  
로동신문
그때처럼 우리가 살고있는가
체험으로 선택한 길, 신념으로 이어간
전화의 나날 당원이 남긴 수첩을 펼치고

2024.12.16. 《로동신문》 3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국청사에 금문자로 새겨진 전승세대의 공적중에서 제일 귀중하고 값진것은 영웅적인 투쟁정신과 기풍을 창조한것입니다.》

전승세대 후손의 영예로운 사명을 각인시켜주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공화국영웅홀!

위대한 영웅정신, 빛나는 금별메달과 함께 숭엄히 안겨오는 600여명 영웅들의 모습들가운데는 공화국영웅 전기철동지의 사진도 있다.

우리는 전기철동지가 남긴 색바랜 기록수첩과 그 갈피갈피에서 조선로동당원으로서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와 전화의 당원들의 영웅적인 투쟁정신이 얼마나 값비싸고 소중한것인가를 다시금 깊이 새기고저 한다.

 

나는 왜 로동당원이 되였는가

 

사람들은 흔히 일기장이나 수첩의 첫 페지에 자기나름의 인생철학이나 좌우명이 담긴 문구를 새겨넣군 한다.

하다면 전기철동지는 수첩의 첫 페지에 어떤 글을 남기였는가.

《나는 왜 로동당원이 되였는가》, 바로 이것이였다.

전기철동지는 대대로 가난에 쪼들린 소작농의 아들로 태여나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였다.

아무리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식구들에게 차례지는것은 멀건 죽그릇뿐이였고 학교라고는 문전에도 가볼수 없는 처지였다.

해방이 되여서야 그는 노예생활의 멍에를 벗어버릴수 있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후 전기철동지는 진정한 인간의 존엄과 생활의 보람을 알게 되였다.

그는 《나는 왜 로동당원이 되였는가》라는 제목아래에 이렇게 썼다.

《소작료는 물지 않게 되였고 가을날 집토방에는 곡식가마니가 가득 쌓이게 되였다.어머니는 지주집에 가서 빨래를 해주지 않게 되였고 어린 동생도 지주놈 애기보기를 면할수 있었다.우리 집에서는 굶주림과 헐벗음이 일제놈들, 지주놈들과 함께 쫓겨나고야말았다.

… …

당은 내가 혁명적인 사상을 지닐수 있게 해주었고 어떻게 조국과 인민과 자기를 사랑할것인가를 배워주었다.

나는 알았다.체험과 학습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위한 투쟁의 길과 무기를!

1946년 9월 5일 나는 로동당원이 되였다.나에게 새 생활이 시작되였다.》

정녕 김일성장군님은 전기철동지를 비롯하여 압박과 천대속에 살아온 광범한 근로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광명과 새 생명, 새 생활을 안겨주신 위대한 은인이시였고 어버이이시였다.

해방후 한해동안의 실체험속에서 전기철동지는 참으로 귀중한것을 깨달았다.

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는것이야말로 새 인간으로 자기를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더욱 충성다하는 길, 수령의 뜻을 누구보다 앞장에서 관철하는 참된 길이라는것을.

바로 그래서 전기철동지는 영광스러운 당대렬에 들어섰고 값높은 정치적생명을 받아안았을 때의 감격을 수첩의 제일 첫 페지에 남겼던것이다.

당원은 수령께 충실할것을 당앞에 맹약하고 스스로 당대렬에 들어섰으며 깨끗한 당적량심으로 당정책을 받들고 혁명과업수행에 헌신하는 자각적인 투사이다.

전기철동지는 혁명적당, 진정한 인민의 당의 한 성원이라는 높은 당적자각과 숭고한 책임감이 비낀 이 물음을 수첩의 첫 페지에만 적어넣지 않았다.마음속 첫자리에도 늘 새겨두고 입당할 때의 열정이 식지 않았는가를 항상 돌이켜보았다.

《…청춘의 보람 당에 바치는것, 둘도 없는 생명 당에 바치는것, 이것이 세상에 태여난 보람이다.당은 나를 굳세고 싸우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당원이 된 그것보다 더 힘있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것은 없다.

1948년 2월 평양에서》

전기철동지는 이렇듯 당원의 영예를 가장 고귀한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자신에 대한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고 당적수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해방후 철도경비대에 남먼저 입대하여 철도시설물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계급적원쑤들과 용감히 싸웠다.

인민군대에 입대한 후에도 그는 당원답게 훈련과 생활에서 항상 모범이였다.

전기철동지의 군무생활 전 과정은 항상 새로운 출발선의 연장이였고 실천투쟁속에서 자신의 당성을 단련해나가는 식을줄 모르는 당생활의 용광로였다.

하기에 그는 수첩에 이런 글도 새겨넣을수 있었다.

《원쑤 미제와 리승만도당이 우리 조국에 어두운 밤을 억지로 가져오려고 발악하고있는 현실, 이것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있다.나는 맹세한다.김일성장군님께!…

우리 조국과 인민들의 행복한 새삶을 위해 끝까지 싸울것을!

1950.5.20.》

나는 왜 로동당원이 되였는가.

이것은 전기철동지가 자기의 체험으로 선택한 길에서 늘 되새긴 량심의 물음이였다.

새세대 당원들이여, 돌이켜보자.

전세대 당원들처럼 자신이 당원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가, 입당할 때 다진 맹세를 지켜 한생을 꿋꿋이 걸어가고있는가.

 

한걸음도 물러설수 없다!

 

당이 준 명령지시집행에서 당원은 반드시 대중의 수범이 되여야 하며 이는 희생적인 투쟁정신을 전제로 한다.

가렬처절한 전화의 하루하루는 당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당성을 당과 인민앞에 검증받는 준엄한 나날이였다.

동두천해방전투에 참가한 때로부터 의정부와 서울, 대전 등을 해방하는 전투들에서 전기철동지는 항상 대오의 기수였고 전우들의 힘이였다.

부상당한 중대장으로부터 중대지휘를 인계받은 후 전기철동지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전기철동지의 수첩에는 《락동강전투》라는 제목밑에 이런 내용의 글도 있다.

…8월 5일 새벽 중대는 사단이 락동강을 도하하는데 선발대로서 락동강대안교두보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기철동지와 그의 전우들이 받은 명령은 길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1950년 8월 5일의 상황을 전기철동지는 수첩에 이렇게 기록했다.

…적비행기는 도하하는 우리들에게 맹폭격을 들이댔다.포탄도 비오듯 떨어졌고 떼목은 흩어졌다.22명이 대안에 올라섰는데 식량과 신발, 모자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남은것은 무기와 탄알, 수류탄뿐이였다.…

생사기로에서 벗어나 강의 적들쪽 대안에 겨우 오른 전기철동지와 중대는 숨돌릴사이도 없이 대구방향에서 달려드는 적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밤이 깊어갔지만 아군부대가 도하하는 기색은 없었다.

량익측과 정면에서 들려오군 하는 적들의 총소리, 뒤에는 검푸른 락동강, 정황을 알수 없는 전방…

나아갈 길도 없고 돌아설 길도 없는 그야말로 절해고도였다.

일부 당황해하는 대원들도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전기철동지의 수첩을 통해 잘 알수 있다.

…일부 전투원들은 물었다.

《어째서 부대가 도하하지 않을가요?》

그들을 격려해주는것이 필요했다.

《아마 도하준비가 다 되지 않은것같다.우리는 부대의 도하를 보든 못보든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이 교두보를 사수해야 한다.…미국놈들이 쫓겨갈 날은 멀지 않았다.》…

도하과정에 식량을 전부 잃은 전투원들은 다음날 적들의 폭격과 포격에 황페화된 밭에서 남새를 주어 끼니를 땠다.

8월 6일 아군진지와 그 주위에 맹폭격을 해댄 적들은 또다시 공격해왔다.하지만 22명의 전투원들은 수풀과 지형지물에 은페하여 7차례나 되는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켰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피어린 전투속에 교두보를 사수했지만 아군의 도하는 진행되지 않았다.

총포탄이 작렬하는 속에 2명의 전우는 전사하였다.14명은 부상을 입었고 싸울수 있는 전투원은 전기철동지까지 겨우 6명뿐이였다.

상처가 크고 출혈이 심하였지만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전우들, 그들을 후송할수도 없고 제대로 치료조차 할수 없는 상황을 두고 전우들은 피가 끓었고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거기에다 며칠동안 물만 마시며 싸우자니 성성한 사람조차 지칠대로 지쳤다.

당이 준 지시를 집행하는 과정에는 난관이 조성될수도 있다.이때 대오에는 남먼저 난관을 타개해나가는 선각자가 있어야 한다.그 사람은 다름아닌 당원이여야 한다.

전기철동지는 동지들앞에 나서서 웨쳤다.

전우들, 우리는 싸워야 하며 반드시 이겨야 한다.승리는 곤난을 희생적으로 극복할 때 이루어진다.

전기철동지는 그날 밤 2명의 전우들을 데리고 적진속에 들어가 적정도 알아내고 중기관총과 탄창들, 수류탄들을 로획하여가지고 돌아왔다.

전기철동지의 모습에서 대원들은 용기를 얻었다.중상자들속에서도 방아쇠를 당길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호를 차지했다.

하루 또 하루…

전호가 무너지면 다시 굴설하고 탄약이 떨어지면 원쑤들의 무기를 로획하면서 용사들은 매일과 같이 진행되는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거의 열흘만에야 그들은 부대에서 파견한 련락군관을 만날수 있었고 진격하는 아군의 만세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악전고투하여 근 10일간 교두보를 지켜낸 전기철동지와 그의 전우들!

중대의 선봉에서 당원답게 싸운 전기철동지에게는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전기철동지는 그날의 감격을 자기의 수첩에 이렇게 적어넣었다.

《나를 키워준 조선로동당에 감사를 드리며 김일성장군님께 더욱 충실할것을 굳게 맹세한다.》

* *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사업하다가 생을 마칠 때까지 전기철동지는 당원의 의무에 언제나 충실하였다.

한번은 전기철동지에게 사랑하는 딸이 한가지 부탁을 해왔다.

대학졸업후 열처리공으로 현실체험을 하고있는데 영웅이며 장령인 아버지가 한번만 나서달라는것이였다.

딸의 청을 묵묵히 듣고있던 전기철동지는 이야기했다.

《봉녀야, 공화국영웅칭호는 락동강에서 전사한 전우들모두의것이다.이 장령별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로동당의 아들답게 일을 더 잘하라구 수여해주신거구.아버지의 덕볼 생각말구 제손으로 앞길을 개척해라.그저 당원들처럼 살아라.》

당원들처럼 살아라!

전기철동지는 비단 맏딸에게만이 아니라 조국보위초소에 서는 자식들모두에게 항상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전기철동지가 남긴 색날은 수첩은 당원이라는 고귀한 부름을 어떤 무게로 받아안아야 하며 어떻게 빛내여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혁명의 개척세대의 리념과 정신을 이어받은 전화의 당원들은 오늘도 이렇게 부탁하고있다.

자신이 왜 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는가, 당원답게 살고있는가를 항상 되새기라.그러면 그대는 위대한 우리 당의 참된 아들이 되리라!

박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