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로동신문
실화
삶의 흔적

2024.12.22. 《로동신문》 8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기 사업에 대한 높은 책임감과 일욕심, 진취적인 사업태도를 가지고 최대의 마력을 내야 하며 당과 인민앞에 자기의 충실성과 실천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몇달전 어느날, 창밖에는 어둠이 깃들고 고요한 정적만이 사무실안을 감돌았다.아침부터 연방 기쁨에 넘친 목소리들이 울려나오던 전화기도 조용해졌다.

하지만 청류제약공장 지배인 리근희는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공장에서 개발한 인삼베르베린주사약이 지난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특허를 받은데 이어 올해 세계지적소유권기구가 수여하는 위포국가상을 받았던것이다.

아직은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종업원도 불과 20여명밖에 안되는 공장에서 개발한 고려약이 이렇듯 세계적인 지적제품으로 등록되고보니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이길에 나섰던 지난 10여년전의 일이 떠올랐다.그것은 리근희가 당의 높은 신임에 의해 의약품생산단위의 소장으로 임명된 후 몇해가 지난 어느날이였다.

일군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그도 요즘 생산지표를 놓고 많은 연구를 하고있었다.그래서 퇴근길이면 우정 약국들을 찾아 사람들이 어떤 약들을 리용하는가를 알아보군 하였다.

그날도 저녁무렵 어느한 약국에 들어서는데 마침 고려약이라고 쓴 매대에서 젊은 녀인이 판매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비껴들었다.

녀인은 진렬대쪽을 가리키며 이 약은 얼마동안 써야 하는가고 묻더니 《약을 쓴 후 인차 효과가 나타나는 그런 고려약은 없습니까?》 하고 또다시 묻는것이였다.

고려약은 일정한 기간 리용해야 한다는 판매원의 친절한 말에 녀인은 실망어린 눈빛을 보내였다.

이어 걸음을 옮기는 녀인의 뒤모습이 리근희의 눈뿌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어도 그의 눈앞에는 고려약이 건강에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신약매대로 향하던 녀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고려약도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 사람들의 호평을 받을수 있다.허나 그것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적인 약제조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그는 다음날 아침 종업원들에게 효과가 빨리 나타날수 있는 주사약형태의 고려약을 개발하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향을 비치였다.

일순간 놀라움으로 가득찬 눈길들이 그에게로 모아지였다.그도그럴것이 현장에는 교갑약과 알약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공정밖에 없었다.그 분야의 전문가도 없거니와 부지면적이 제한되여 이제 더 어떤 공정을 꾸린다는것은 이룰수 없는 꿈과도 같았다.

교갑약생산공정이 활성화되여 긴코비아교갑약, 실리바이교갑약과 같은 좋은 약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제 또 일판을 벌려놓으면…

하지만 생활에는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 힘에 부친다는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그쪽으로 쏠리는 경우도 있다.

고려약발전을 위해 애쓰는 그의 진정에 감복되였다고 할가 종업원모두가 다음날부터 주사약생산공정을 꾸리는 사업에 떨쳐나섰다.

일단 결심하면 끝까지 해내고야마는 리근희는 주사약개발과 생산공정현대화를 동시에 내밀었다.할바에는 다른 제약공장들이 부러워하게 로력절약형, 부지절약형, 에네르기절약형으로 꾸려놓고 개발사업을 내밀자고 하는 그를 본 종업원들은 그것이 단순히 의약품지표 하나를 늘이기 위한것이 아니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소문을 내고있는 제약단위들과 전문연구단위들을 찾아가 경험을 배우기도 하고 며칠밤을 새우면서 새로운 착상을 무르익히기도 하던 어느날 평양의학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약학전문가인 임지혜가 배치되여왔다.그의 사업을 돕기 위해 보건성 당조직에서 취한 조치였다.

당조직의 믿음과 기대를 다시금 새겨안고 리근희는 더욱 분발하였다.

문헌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제조방법을 확립하고 그에 맞게 생산공정을 갖추는 사업을 동시에 벌려놓다보니 결정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다.

사무실을 아예 실험실로 꾸려놓은 리근희는 낮과 밤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른채 바삐 돌아갔다.어떤 날에는 초저녁부터 다음날 날이 밝을 때까지 실험실을 뜨지 못한적도 있었다.

한번은 눈에 피발이 선채 어쩌다 집에 들린 그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고싶어 안해가 몰래 시계바늘까지 돌려놓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주사약개발에서는 좀처럼 전진이 이룩되지 않았다.

인삼을 비롯한 약초들로 복방처방을 한데 기초하여 주사약형태로 할수 있게 물풀림성을 100% 보장할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얻어낸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전문연구단위들의 도움으로 3년만에 겨우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분자량이 서로 다른 물질들의 안정성문제가 또다시 제기되여 개발사업은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이 이쯤 되고보니 첫 시제품이 언제쯤 나올가 하고 호기심을 안고 지배인만 지켜보던 종업원들의 기대어린 눈길에 점차 실망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교갑약생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것으로 하여 교류소에 불과했던 단위는 제약공장으로 전환되고 그도 지배인사업을 하게 되였다.

성과도 있는데 괜히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는가며 이제라도 알약으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소리들도 들려왔다.

사실 리근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군사복무시절이나 대학시절에 무슨 일에서나 앞자리를 차지하였던 그는 다른 제약공장들이 의약품의 가지수를 늘이면서 꽝꽝 생산할 때면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인삼의 기본성분인 사포닌이 먹는 방법으로는 5%정도밖에 흡수할수 없다는 과학적인 자료를 보게 되였을 때 리근희는 자기의 결심을 더욱 굳히였다.

대학시절 그의 스승은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가르치군 하였다.우리는 세상에서 으뜸인 인삼의 산지에서 살고있다, 동무들이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인삼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풍부한 약초들의 치료와 효과범위를 보다 넓힌다면 우리 인민모두가 무병무탈하기를 바라는 우리 당의 숙원이 하루빨리 풀리게 될것이다.

사람이 먼길을 가려면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하물며 남들이 가보지 못한 탐구의 초행길을 헤쳐야 할 때는 신념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그래야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나가겠다는 배짱도 방도도 생기는 법이다.

거듭되는 실패속에서도 이들이 주저앉지 않고 선택한 길을 멈춤없이 갈수 있은것은 우리 식의 고려약개발이라는 높은 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겠다는 의지가 마음속에 암반처럼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였다.

리근희와 종업원들이 주사약의 첫 시제품을 내놓게 된것은 이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나서였다.

그때의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그러나 며칠후 리근희는 이 모든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그러는 그에게 개발조의 한 성원인 임지혜는 너무도 안타까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실험실적으로도 성공했고 또 림상검토에서도 합격으로 나왔는데 왜 실패라는겁니까.지배인동지의 높은 요구성때문에 온 공장이 끝이 나지 않는 길을 가는건 아닙니까.》

《정말 미안하오.》

아직은 이 말 한마디밖에 할수 없었던 리근희의 마음도 아팠다.얼마나 고심어린 노력으로 얻어진 성과였던가.

허나 자그마한 결점도 없는 완벽한것을 내놓기 위해 그는 또다시 탐구의 험난한 초행길을 걸었다.

후날 모든 지표들이 세계적인 기준에 도달되고 주사약의 흡수성과 즉효성, 안정성, 무통효과를 완전히 해결하였다는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게 되였을 때 임지혜는 모든걸 알게 되였다.

그가 왜 그때에 성공을 부정하였는지.

인민들을 위해 의약품개발도 하고 세계를 향한 목표도 정해진다.우리가 걷는 길은 단순히 의약품개발을 위한 탐구의 길이기 전에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이다.이것이 바로 지배인과 함께 초행길을 걸으며 이곳 종업원들이 찾은 인생의 진리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면역강화제로 좋을뿐 아니라 간염과 위염치료에 특효인 인삼베르베린주사약이 세상에 나왔다.이와 더불어 공장은 개발한 거의 모든 의약품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허를 받고 국내외의 여러 전시회에서 상장과 메달, 컵, 과학기술증서를 수여받은 흔치 않은 단위로 이름떨치게 되였다.그 증서마다에는 언제나 청류제약공장이라는 명칭이 새겨져있었다.

리근희지배인과 종업원들이 걷는 길!

그것은 출발점은 있어도 종착점은 없어야 할 탐구의 길, 복무의 길이다.

그길우에 새겨지는 삶의 흔적이야말로 한생을 빛나게 하는 가장 값높은 증서인것이다.

본사기자 김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