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억만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혁명의 만년재보
사자봉밀영

2024.12.25. 《로동신문》 2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빛나는 혁명전통은 우리 당과 혁명의 억센 뿌리이며 그 대를 이어주는 피줄기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후반기 백두산지구에 조선혁명의 중심적령도거점을 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위성밀영들을 꾸리도록 하시였다.

그중에는 사자봉밀영도 있다.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하나인 사자봉밀영은 백두산밀영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밀영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 계시면서 자주 오시여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을 만나시고 회의도 지도하신 불멸의 사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이다.소백수골에서 얼마 멀지 않은 사자봉기슭에 자리잡고있는 밀영은 1936년 10월중순부터 11월중순사이에 꾸려졌다.

백두산밀영을 보위하기 위한 전방밀영과 같은 사자봉밀영은 사령부를 찾아온 사람들의 접수소인 동시에 대기소이기도 하였고 면담소인 동시에 숙소이기도 했으며 또한 강습소인 동시에 훈련소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에 계시면서 소부대를 파견하시거나 국내에서 활동하고있는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을 만나시여 모임을 가지실 때면 사자봉밀영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1936년 11월 천도교 도정 박인진과 천도교대표들을 만나시여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서 견지해야 할 립장과 조국광복회에 천도교인들을 망라시키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1937년 7월중순에는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조직지도하시였다.

사자봉밀영은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중요한 출판기지였다.사자봉밀영의 출판소에서는 1930년대후반기부터 조국이 해방되는 날까지 많은 출판물을 만들어내였다.

인민대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혁명적출판물이 노는 역할에 대해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기 위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여기에 출판소를 꾸리도록 하시였다.

혁명적출판물은 사람들에게 혁명의 량식을 주는 힘있는 정치적무기이라고, 그러므로 우리의 출판물이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자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에게 정치적량식을 제공하며 각계각층 군중을 반일의 기치밑에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여러가지 출판물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오늘도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출판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을 비롯한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들을 해설한 여러가지 선전물과 각종 교양자료를 많이 찍어냈다.《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창립선언》이 출판된데 이어 《3.1월간》창간호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기간행물과 소책자들, 제강과 해설자료 등 선전물들이 많이 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공작원들을 지방에 파견하시거나 지하혁명조직성원들이 찾아왔을 때 이곳 출판소에서 찍어낸 선전물과 교양자료를 주어 보내군 하시였다.

출판소에서 찍어낸 여러가지 선전물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정치공작원들 그리고 혁명조직성원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을 굳게 묶어세워 조국해방성전에 떨쳐나서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곳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던 사령부귀틀집, 출판소와 대원실자리, 우등불자리, 혁명적구호문헌들이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 3월 사자봉밀영을 돌아보시면서 사자봉밀영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장치도 잘하였다고 하시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좋은 구호들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사자봉밀영은 절세위인들의 항일혈전사와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며 혁명의 만년재보로 빛을 뿌리고있다.

글 본사기자 유성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