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전세대 당원들은 이렇게 살며 투쟁하였다
당적량심의 선택-어려운 곳으로

2024.12.25. 《로동신문》 3면


당에 대한 충실성은 말이 아니라 높은 실적으로 뚜렷이 표현되여야 한다.전세대 당원들이 지녔던 이러한 정신세계를 평양목재종합공장(당시) 당원이였던 최규백동지가 새겨간 헌신의 자욱자욱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원들은 언제나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안고 혁명과업수행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선봉투사가 되여야 합니다.》

1958년 4월 어느날 공장초급당위원회 일군은 최규백동지로부터 하나의 청을 받게 되였다.

생산기술부 지도원인 그가 가구직장 프레스작업반으로 가게 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초급당일군은 리유를 물었다.어떤 사람들은 동무처럼 사무원으로 일했으면 하는데 웬일인가고.

최규백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장을 찾으시여 인민들에게 가구를 더 많이, 더 질좋게 만들어줄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목삭판을 만들어 가구생산도 늘이고 건설장들에도 많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신 간곡한 가르치심을 되새겨보았다.그러고나서 말하였다.

《그러니 제가 할 일은 사무실이 아니라 가구직장 프레스작업반에 있습니다.》

사실 그때 온 공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과업관철을 위한 투쟁으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그런데 가구직장 프레스작업반은 접착제가 걸리여 목삭판시험생산을 내밀지 못하고있었다.

충성심이 높고 기술도 있는 최규백동지가 그곳에 가면 문제가 한결 풀릴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당조직에서는 최규백동지를 가구직장 프레스작업반으로 보내게 되였다.

최규백동지는 그곳에서 머리를 싸매고 접착제연구에 달라붙었다.그는 피타는 사색끝에 한 종류의 접착제를 목삭판생산에 쓸수 있다는것을 확증하게 되였다.

목삭판생산을 위한 프레스작업반의 투쟁은 강선의 모범을 따라 온 나라에 타오른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세찬 불길속에서 치렬하게 벌어졌다.프레스작업반은 공장적으로 제일먼저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이 작업반에서 생산하는 목삭판은 질이 높았다.그러나 최규백동지는 더 높은 목표를 내세웠다.작업반원들을 목삭건구판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로 이끌었다.대중의 힘과 지혜가 남김없이 분출된 가운데 목삭건구판생산에서도 성공하였다.

가구직장에는 골조식가구에 비해 목재가 훨씬 적게 들고 로력이 절약될뿐 아니라 질도 훨씬 더 높은 판식가구생산에로 넘어갈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였다.

그후 공장에는 목삭판직장이 생겨났다.당조직의 믿음에 의해 최규백동지는 이곳 직장장으로 임명되였다.그는 목삭판생산을 종전의 교대당 1회전으로부터 8회전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혁신도 성공에로 이끌었다.

최규백동지는 또한 공장에 파견되여온 3대혁명소조원들의 방조밑에 생산공정을 자동화할 생각을 하고 준비를 착실히 하였다.이미 쓰던 5대의 프레스가운데서 한대만 쓰면서도 로력을 줄일뿐 아니라 생산을 대폭 끌어올릴수 있는 자동화설비로 생산공정을 다시 꾸릴것을 결심하였다.

일부 일군들이 목삭판생산이 얼마동안 중단되게 되지 않겠는가고 우려할 때에도 그는 대담하게 생각하고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라는것은 우리 당의 요구이라고 하면서 비상한 실천력을 발휘하여 직장의 자동화를 실현하고야말았다.

온 공장이 그 성과를 두고 기뻐하던 어느날이였다.최규백동지는 공장당일군을 찾아가 자기를 생필직장 가구제작공으로 보내달라고 제기하였다.

아연해하는 당일군에게 최규백동지는 이렇게 절절히 말하였다.

《당조직에서 절 생각해주는건 고맙습니다만 젊은 사람들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더구나 이제 와서 그 직장에서 제가 할 일은 더는 없습니다.하지만 생필직장엔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자기의 편안보다 단위의 발전과 국가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며 끊임없이 아름찬 일감을 찾아 스스로 떠메는 고결한 투쟁기풍에 당일군은 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젊은 일군에게 자동화된 직장을 넘겨주고 생필직장의 가구제작공이 된 최규백동지는 밥상작업반으로 갔다.

까닭이 있었다.좋은 나무를 쓰면서도 그중 랑비가 많은것이 밥상생산이였기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밥상도 나무를 쓰지 않고 목삭판으로 질좋게 만들수 있겠는가?)

고심참담한 노력을 쏟아붓는 과정에 그는 목삭판을 형타로 찍는 방법으로 밥상을 훌륭히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뿐만아니라 다른 가구의 부분품들도 프레스와 형타로 찍어내여 그 질을 훨씬 높이면서도 제품을 가볍게 하고 자재를 절약하게 하는 등 많은 기술혁신을 하였다.

형타에 의한 가구생산법의 성공으로 최규백동지는 발명권을 받았다.

오늘의 새세대 당원들은 최규백동지를 비롯한 전세대 당원들의 숭고한 풍모와 투쟁기풍을 본받아 높은 실적으로 삶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가는 진짜배기선봉투사가 되여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리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