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6. 《로동신문》 5면
얼마전 평양산원을 찾았던 우리는 최상의 의료상방조를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 수십명의 산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그들은 다름아닌 평안북도와 자강도, 량강도에서 온 수해지역 녀성들이였다.
평양산원 일군의 말에 의하면 수재민들이 평양에 올라온 때부터 50여명의 녀성들이 건강한 애기들을 낳았다고 한다.결국 수재민들의 수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평양으로 올 때보다 50여명이 더 늘어난셈이다.
우리는 주인공들을 만날수 없었다.한생을 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과 보답의 일념을 안고 귀로에 올랐던것이다.하지만 받아안은 행복에 목이 메여 그들이 터친 격정의 목소리는 여러 산과에 남긴 반영문들에서 뜨겁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우리는 인민을 끝없이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을 참다운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4산과에 입원했던 김형직군 연포로동자구의 김효심동무는 아이를 낳고 입원실로 돌아오니 당의 은정속에 마련된 10여가지나 되는 물자들이 자기를 기다리고있었다고, 그것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애기포단과 애기어머니용솜옷, 애기들의 봄가을, 겨울내의, 손수건이며 아동양말, 애기숟가락과 애기젖병을 비롯하여 정말이지 애기를 키우는데 필요한 모든것이 빠짐없이 갖추어져있었는데 볼수록 가슴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습니다.어머니당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꿈같은 일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한페지한페지 번져갈수록 우리의 눈앞에는 당의 은정속에 한생 잊을수 없는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을 녀성들의 모습이 방불히 그려졌다.
매끼 공급되는 갖가지 영양식사며 신선한 과일과 사이다, 간식을 비롯하여 피해지역에서 온 산모들에게 베풀어지는 당과 국가의 혜택은 정녕 끝이 없었다.녀성들이 산원에 입원해있는 기간 그들의 자식들은 산원에 꾸려진 탁아소에서 아무런 근심없이 뛰여놀았다고 하니 진정 수해지역의 녀성들은 알고 받는 사랑보다 모르고 받는 혜택이 더 많은 그런 행복의 주인공들이였다.
신의주시 하단리에서 왔다는 김일화녀성의 심정은 어떠했던가.
임신한 몸으로 평양에 올라올 때에는 부모도 곁에 없고 집떠나 외지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에 솔직히 걱정이 없지 않았다고, 그런데 이렇게 평양산원에서 근심걱정없이 아이를 낳고보니 자기의 친정집은 늘 곁에 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썼다.
《처음엔 우리 어머니도 외지에서 해산하게 될 딸이 걱정스러워 안절부절 못했습니다.전화를 통해 제가 평양산원에서 어떤 혜택속에 아이를 낳고 어떤 보살핌을 받고있는가를 전해듣고서는 오래도록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가정은 이번에 시집과 본가집 그리고 자기 집까지 한날한시에 궁궐같은 새집을 세채나 받아안게 된다고, 당의 사랑속에 복이 겹치니 요즘은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하늘같은 당의 사랑에 어떻게 하면 보답할가 하는 생각뿐이라고 자기의 격정을 글에 담았다.
가슴후더워짐을 느끼며 글줄을 따라읽어가는 우리에게 4산과 과장은 량강도에서 온 한 녀성이 평양산원에서 석달 남짓하게 입원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그의 말에 의하면 수재민들이 평양에 도착한 순간부터 임신부들을 위한 건강보호대책이 세워지고 그들속에서 자그마한 이상이라도 나타나면 즉시 평양산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해준 당의 조치에 따라 여러명의 녀성들이 오랜 기간 입원생활을 하며 귀여운 자식을 아무 탈없이 낳았다고 한다.
당의 은정속에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자식을 낳은 수해지역 녀성들의 격정의 목소리는 다른 산과들의 반영문에서도 끝없이 울려나왔다.
처음에는 친정집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서 아이를 낳으려고 생각했었는데 평양산원에 오고보니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사랑의 품속에 안겨사는가를 다시금 체감하였다고 진정을 토로한 산모도 있었다.
강계시에서 온 한 산모는 아기들의 사랑의 요람인 평양산원이 아니였다면 자기 자식은 소생되지 못하였을것이라고 격정을 터놓았고 시중군에서 온 한 녀성은 자기 자식의 고향은 평양이라고 하면서 평양산원에서 받아안은 당의 사랑과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을 영원히 잊지 말라는 뜻에서 아들의 이름을 《평산》이라고 지었다는 글을 남기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1산과에는 금방 해산을 한 다산모가 있었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평양으로 올 때에는 다섯 자식과 함께 왔는데 이젠 여섯 자식을 거느리게 되였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얼마전까지 다섯 자식의 어머니였는데 지난해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도 참가하여
수재민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하여 수도시민들도 부러워하는 귀빈으로 특별대우를 받은 복받은 녀성들, 그들은 평범한 공민들이였다.
우리는 근로하는 인민을 제일로 내세우고 그들의 복리를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낌없이 기울이는 우리 당과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을 평양산원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복동이를 낳은 수해지역 녀성들의 토로를 통해서도 다시금 절감할수 있었다.
비록 필체는 다르지만 수십명의 녀성들이 남긴 반영문들에서는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평양입니다.》
이 진정의 목소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본사기자 유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