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로동신문
광산에서 들은 세가지 자랑

2024.2.1. 《로동신문》 5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국도처에 마련해놓은 축산기지와 양어기지, 온실과 버섯생산기지들에서 생산을 정상화하여 인민들이 덕을 보게 하여야 합니다.》

신평광산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에게서 세가지 자랑을 듣게 된다.

며칠전 이곳을 찾은 우리도 그 자랑들을 들으며 제손으로 행복을 가꾸어가는 신평광산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미더운 모습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광산의 류다른 이름

 

광산의 첫째가는 자랑은 많은 집짐승을 길러 그 덕을 톡톡히 보고있는것이였다.하여 우리는 축사로 향하게 되였는데 그길에서 일군들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였다.

《〈뿔물등에광산〉이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습니까?》

그 말에 우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수 없었다.

말그대로 땅속에 묻혀있는 유용광물을 캐내는 곳이 광산인데 《뿔물등에광산》이라니?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광산의 일군인 한철수동무는 뿔물등에를 많이 생산하여 축산에서 덕을 보고있기에 류다른 부름이 생기였다고, 뿔물등에자랑이자 곧 축산자랑이라고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몇년전까지 광산에서는 광부들에 대한 후방사업이 응당한 수준에서 진행되지 못하였다.후방사업이자 정치사업이고 후방사업이 잘되여야 생산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다는것을 자각한 일군들은 축산을 본때있게 내밀 결심을 하였다.그래서 2층짜리 뿔물등에서식장을 번듯하게 건설하게 되였다.

처음에는 뿔물등에에 대한 파악이 없어 애로가 많았다.

하지만 일군들은 주저하지 않고 과학기술보급실에서 뿔물등에와 관련한 자료들을 연구하였으며 뿔물등에생산을 잘하여 덕을 보고있는 단위들도 찾아다니였다.결과 뿔물등에생산에서 성과가 이룩되기 시작하였고 축산도 활성화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우리는 광산의 축사에 이르렀다.

듣던바그대로 축사에서는 수많은 짐승들이 욱실거리였다.

여기서 만난 종업원들은 우리에게 뿔물등에를 리용하니 알곡먹이를 줄일수 있어 좋고 또 축사에서 나오는 집짐승배설물을 뿔물등에의 먹이로 리용하니 정말 좋다고 저저마다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와 알들이 광부들의 가정과 영양제식당에 공급되고 그것이 그대로 광물증산에로 이어지니 어찌 《뿔물등에광산》이라는 부름이 나오지 않으랴.

 

대한추위속에서 본 남새풍경

 

우리가 광산을 찾았던 날은 대한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였다.흐뭇한 마음을 안고 축사를 나선 우리의 눈앞에 싱싱한 남새들을 안고 걸음을 옮기는 녀인들의 모습이 어려왔다.

밝게 웃는 그들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동행한 광산일군은 오늘이 남새온실에서 생산한 남새를 종업원들에게 공급하는 날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의 말은 우리를 광산의 남새온실로 향하게 하였다.

한창 남새공급으로 흥성이는 온실에 들어선 우리는 흥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남새온실이 무난방온실이라는것이다.

사방 산으로 둘러막혀있어 하루 해비침시간도 짧은 온실이 무난방온실이라니 흥미가 동하였다.

온실관리를 하는 녀성종업원은 우리에게 나라살림살이를 생각하고 종업원들을 위하는 일군들의 마음이 낳은 결실이라고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불리한 조건으로 하여 겨울철 온실운영에 소모되는 연료가 간단치 않았다.하여 광산의 일군들은 대담하게 온실을 무난방온실로 개조할 결심을 하였으며 여러층으로 박막을 설치하는 방법을 도입하였다.

무난방온실에서 생산한 남새를 볼 때마다 머리를 쓰고 이악하게 노력하면 얼마든지 실리를 보장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군 한다는 종업원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인상깊었다.

 

사라진 비치용

 

우리는 광산의 영양제식당들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에서 종업원들의 버섯자랑도 들을수 있었다.

한 혁신자광부는 영양제식당의 식탁에도, 자기 가정의 밥상에도 버섯료리가 오른다고, 거기에도 종업원들을 위하는 광산일군들의 뜨거운 진정이 깃들어있다고 하였고 한 녀성종업원은 얼마전에도 버섯을 공급받았다고, 버섯공급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니 이제는 종업원들 누구나 버섯의 생산주기까지 알고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얼마후 버섯재배장을 찾은 우리는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겉모습부터 산뜻하고 정갈하여 광산으로 들어서면 류달리 눈에 띄우는 건물이 버섯재배장이였다.

내부 또한 구획마다 그쯘하였고 서로 키돋움하며 자라는 버섯들도 눈길을 끌었다.

버섯재배장에서 우리와 만난 관리원은 몇해전까지 버섯재배장은 종업원들의 식생활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비치용이였다고 말하였다.

그때 버섯재배장이 우리 단위에도 있다는 선전용, 비치용이 된다면 당정책이 은을 낼수 없다고 하면서 밤을 새우며 버섯재배와 관련한 지식을 습득하고 실지 종업원들의 생활에 이바지하게 하려고 애쓰는 일군들을 보며 버섯재배장의 관리원들과 후방부문의 종업원들도 이악하게 학습하고 노력하였다.그런 나날이 오늘로 이어져 이제는 겉모양도 멋있지만 생산도 정상화하는 버섯재배장으로 될수 있었다.이렇게 되여 비치용이라는 말은 스스로 사라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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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일군들의 사무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축산과 온실남새생산과 관련한 도서들이며 농장의 겨울포전을 방불케 하는 부업지의 거름더미들, 구내의 빈땅마다에 심은 자주꽃자리풀 등은 광산의 세가지 자랑이 어떻게 꽃펴나게 되였는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있었고 자랑이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되리라는것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자기 힘, 자기 손으로 행복을 가꿔가는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여서 볼수록 미더웠고 떠나고싶지 않은 광산이였다.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