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4. 《로동신문》 2면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다.하지만 그들이 받아안은 당의 사랑과 은덕은 글로도 말로도 다 전할수 없다.
수재민이라는 그 하나의 리유로 피해지역의 인민들은 우리 당이 떠받들어모시고 정성다해 섬기며 시중드는 특별귀빈이 되고 세상이 부러워할 행복의 별천지에 보금자리를 폈다.
《우리 당은 자기의 붉은 기폭에 마치와 낫과 붓을 아로새긴 때로부터 인민과 한시도 떨어져본적이 없으며 언제나 인민을 하늘처럼 섬기며 혁명을 전진시켜왔습니다.》
자연의 재난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무수히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어이하여 이 땅에서는 수재민이 만복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현실이 례사롭게 펼쳐지는것인가.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한다는 말은 왜 이 땅에만 있으며 우리 인민은 과연 무엇때문에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당을 따라 하늘땅 끝까지 갈 신념을 대를 이어 간직하는것인가.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들가까이에 더 바투 다가가 고락을 같이하는 우리 당의 본연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우리는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당의 극진한 보살핌속에 특별귀빈이 된 수재민들의 실생활속에서, 그들이 한목소리로 터친 로동당만세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고 한다.
《얘들아, 어서 오너라!》
지난해 8월 피해지역의 아이들은 정말 꿈을 꾸듯이 평양행렬차에 올랐다.
TV에서만 보던 평양,
평양이 가까와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조마조마해졌다.그의 부모는 나라앞에 죄를 지었던것이다.
8월 15일, 1만 3천여명의 수재민들과 함께 4.25려관에 들어선 류정이는 그만 깜짝 놀랐다.꿈결에도 뵙고싶던
모두가 먼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철들어서부터는 단 한번도 불러본적 없던 부름이였다.꿈속에서라도 떳떳이 소리쳐불러보고싶던
류정이는 똑똑히 보았다.
뜨거움에 젖어있던
뚝뚝 끊기는 갈리신 그 음성에서 수재민들은 온몸으로 느꼈다.집과 가산을 잃은 자기들의 마음속아픔을 다 합친것보다 더 막중한 괴로움을 안으시고 누구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을 아이들을 남먼저 포근히 감싸안으시는 자애로운
큰물에 재난을 당한 아이들중에서도 마음속그늘이 더욱 짙었던 류정이는 이렇게 부모가 나라앞에 바로 살았든 죄를 지었든 차별하지 않고 뜨거운 정 부어주시는
하지만 류정이와 같은 피해지역의 아이들은 다는 알수 없었다.
불행을 겪은 아이들을 어서 안아주고싶고 상처입은 가슴들에 한시바삐 웃음을 피워주고싶은 자애로운
국가적인 회의와 행사보장을 위하여 꾸려진 4.25려관의 호실들이 잠을 잊은 군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속에 학생들과 어린이들의 교실로, 교양실로 꾸려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결코 림시교실들이 아니였다.
교구비품도 교육설비도 장난감도 새것으로, 제일 좋은것으로!
피해지역 아이들에게 최상의 교육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바야흐로 개교의 날이 왔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공부하게 될 학교며 유치원을 꿈속에서처럼 황홀하게 돌아본 수재민들은 깜짝 놀랐다.자기들의 숙소도 궁전이라고 여겼는데 철부지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은 말그대로 궁전우의 궁전이였다.
생사기로에 놓였던 생명들을 희생적으로 구원해주신 은인께 아직 고마움의 인사 한마디 변변히 드리지 못했는데 수천명의 아이들에게 어제는 새 교복과 학용품, 신발까지 안겨주시고 오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새 교정을 마련해주신 크나큰 그 은덕에 그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진정 침수논우에서 당결정을 채택하실 때 우리
그것은 4.25려관의 류다른 학교에서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아안은 이동교육대 교원들과 교양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기도 하였다.그중에서도
못잊을 그날 그는 도형에 대한 인식을 주기 위해 문수물놀이장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이다음에 선생님이랑 같이 문수물놀이장에 꼭 가보자고.
그런데 글쎄 불과 몇시간후에 사랑의 뻐스를 타고 학생들과 함께 문수물놀이장에 특별대우를 받으며 들어설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금방 새로 모여앉은 아이들의 서름서름한 마음을 풀어주고싶어 교원이 무심하게 꺼낸 말을 우리
문수물놀이장의 물보라속에 묻혀 좋아라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여있었다.물소리만 들어도 저도 모르게 흠칠 놀라던 아이들은 그 사랑의 바다에서 큰물로 겪은 재난을 씻은듯이 잊어버렸다.
철부지들은 겨끔내기로 말했다.우리 집을 삼킨 흙탕물은 차거웠는데 문수물놀이장의 물은 정말 따뜻하다고, 이젠 물이 무섭지 않다고.
순진한 아이들의 꾸밈없는 그 목소리에 그의 눈시울은 절로 젖어들었다.아직은 개교도 하기 전에 학생들이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와 만경대소년단야영소에서 야영을 하도록 보살펴주시며 운동복과 운동신, 모자까지 일식으로 보내주신 친근한
진정
결코 전력시설이 파괴되고 농경지가 류실되며 도로와 철길이 못쓰게 되는것과 같은 경제부문의 피해만이 아니였다.그이께 있어서 진짜 국가적인 재난은 바로 자연의 재앙으로 아이들의 글소리, 웃음소리를 잃는것이였다.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양보할수 없는 제1의 국사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보육과 교양, 교육문제였다.
사실 평양으로 올라온 수해지역의 어린이들에게는 다 보호자가 있었다.그 보호자들속에는 년로한 할머니들도 있었는데 다른 로인들이 금강산, 묘향산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낼 때 어린애를 붙안고 달래느라면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야릇한 심정에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그런데 우리
한달만에 탁아소에 갔을 때 너무도 고와지고 보동보동해진 손자를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한 할머니들을 더욱 울린것은 그애들이 할머니보다 보육원의 품에 더 먼저 안겨들며 스스럼없이 터친 《엄마!》라는 부름이였다.
자기들이 돌봐야 할 살붙이들까지 다 떠맡아안고 성심을 다해 아이들을 키워주는 어머니당의 보살핌에 과연 어느 누구인들 감격하지 않겠는가.
피해지역의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당의 은정어린 솜옷을 받아안은 지난해 11월 어느날 초급중학교에서는 비상사건이 발생하였다.
3명의 아이들에게 솜옷이 꼭 맞지 않았던것이다.한달전에 지방공업성의 연구사와 함께 아이들의 몸을 몇번이나 잰 담임교원들은 사색이 되였다.
교원들은 서둘러 학생들의 몸을 다시 재기 시작하였다.그런데 글쎄 불과 한달동안에 그처럼 몰라보게 키가 크고 몸무게가 불어날줄이야.
누구나 리해할수 있는 일이였다.하지만 우리 당에 있어서 그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였다.당중앙위원회 일군은 곡진하게 말하였다.
《우리
이렇게 되여 3명의 학생들의 솜옷은 온 공장의 관심속에 다시 한뜸한뜸 지어지게 되였고 아이들은 그날로 꼭 맞는 고운 솜옷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들중에는 세 자매의 막내인 한 소녀도 있었다.아직은 살림이 넉넉치 못해 언니들의 솜옷만 늘 내리입다가 처음으로 새 솜옷을 입은 소녀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솜옷에 붙은 자기의 이름표를 보고 또 보느라니 자꾸 눈물만 나왔다.그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마음속으로 웨쳤다.
(어머니,
그 시각 중구역 리철민고급중학교 교원 전향미동무는 자강도 성간군에서 온 김설강학생의 일기장을 펼쳐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내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짚어주시며 나를 지켜보는 그 눈빛, 왜서인지 선생님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최우등생이 아닌 나도 사랑의 신발을 받아안았다고 몹시도 죄스러워하며
그의 눈에 문득 숙소의 마당가에 줄지어서있는 뻐스들이 비껴들었다.철부지아이들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타고다니는 통학뻐스였다.
피해지역 아이들이 첫 수업을 진행한 그날 유치원어린이들과 소학반학생들이 책가방을 메고 하루에 걷는 거리와 시간까지 친히 헤아려보신
나라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표들을 태우고다니는, 누구나 한번만이라도 올라보기를 소원하며 먼발치에서 지나가도 부러워 손저어주는 그 뻐스가 철부지아이들의 통학뻐스로 되였으니 바로 여기에 우리
비단 설강이만이 아니였다.자강도 산골소녀 문위경이도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과연 누구입니까?》
어린시절에 뜻밖의 일로 오른쪽팔목이 절단되고 다리에도 험한 상처자리가 생기게 된 그에게 있어서 제일 괴로운것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였다.
달린옷을 안겨줄 때에도, 평양에서 중앙의 피복연구사선생님들이 매 호실을 돌며 여름교복을 입혀볼 때에도 위경이는 복도의 기둥뒤에서 홀로 울었다.의수를 한 손때문에 소매가 짧은 여름교복을 입고싶지 않았고 상처로 보기 흉한 다리때문에 달린옷을 입을수가 없었던것이였다.
그런데 수천명 학생들가운데서 위경이의 여름교복만은 소매가 긴것으로 특별히 제작되였음을 알게 되였을 때 세상에 나처럼
내가 과연 무엇이기에 부모도 어쩔수 없었던 그 오랜 상처를 두고 온 나라 일을 돌보셔야 할 우리
국기게양식날에조차 그토록 하고싶은 소년단경례도 할수 없었던 소녀는 가슴가득 차오르는 새 희망을 안고 당중앙하늘가를 우러러 목메여 웨쳤다.
장차 나라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주인공이라는 당당한 존재감만으로도 최상의 환대와 봉사를 받을 응당한 자격을 가지게 된다고 하시며
진정 우리
평양체류의 나날에 유치원아이들이 제일 많이 만들고 그린것이 다름아닌 집이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그 집들중에는 그애들이 우리 집이라 부르는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도 있었고 정들은 유치원도 있었으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반겨맞아줄 집도 있었다.그 모든 집들에 제목을 단다면 그것은 아마도 《품》일것이다.
바로 여기에 설사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오늘의 웃음과 래일의 행복을 굳건히 지켜주고 꽃피워줄 당의 품이 언제나 곁에 있음을, 그 품속에선 누구나 사회주의 내 조국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여나리라는것을 생활속에서 진리로 간직한 우리 아이들의 절절한 웨침이 있다.
130일, 그것은 한생이라는 구간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하지만 당중앙뜨락에서 맞고보낸 그 나날에 인생의 가장 귀중한 성장을 한 우리 아이들은 일생토록 잊지 못할것이다.가장 힘들고 아플 때 제일먼저 《얘들아, 어서 오너라!》라고 부르시던 자애로운
당이 떠받들어 시중든 인민
단순히 숙소가 아니였다.행정구역에도 없는 류다른 주민지구였다.
《세상에 이게 어디 집이요, 궁전이지.학교, 유치원, 미용실, 신발수리소…없는게 없수다.진료소에는 현대적인 의료설비들이 꽉 들어차있고 마당에는 큰 대회때마다 보군 하던 차들이 줄지어서있소.일군들은 저마다 먼저 길을 내주고 군대들은 만날 때마다 거수경례를 하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구려.》
이것은 지난해 8월 뜻밖에 가설천막에서
꿈같은 날과 달이 흘렀다.수재민들은 평양의 문화정서생활기지를 비롯하여 이름난 명승지란 명승지는 다 가보았고 환대란 환대는 다 받았다.
자강도에서 온 한 로인에게는 지나온 130일간의 추억이 참으로 각별하다.
어느날 저녁 잠자리에 누운 로인은 평양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들을 꼽아보기 시작하였다.보기도 처음인 고급료리들이 끼마다 식탁에 새롭게 오르니 어느덧 못먹어본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부지중 그의 입에서는 《시원한걸 먹고싶군.》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그러다 저도 모르게 매일 풍성한 식사인데 웬 투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로인은 혼자 웃고말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식탁에 앉은 로인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분명히 혼자소리로 한 말이였는데 먹고싶었던 음식이 척 차려져있는것이 아닌가.
료리사들이며 일군들이 구미에 맞겠는지 모르겠다며 어서 들라고 수저를 들려주었으나 그는 음식그릇이 보이지 않았다.솟구치는 눈물때문에.
한뉘 태를 묻은 산골에서 농사밖에 한것이 없는 이 촌늙은이를 어쩌면 그리도 다심히 돌봐주실가.그렇듯 극진한 환대를 받을 자격이 내게 있는가.
정녕 송구스러웠다.
꿈을 꾸면 그 소원 꽃피는 나라라더니 이 늙은것이 주책없이 한 말도 어머니당에서는 다 깊이 새겨안고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심심할 때 책이나 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하면 다음날로 호실마다 각종 도서들이 쌓이고 고향에 편지를 쓰고싶다는 말을 하기 바쁘게 호동마다 우편함이 생기고 매 사람에게까지 편지봉투가 와닿았다.
촌늙은이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 말이였다.하지만 우리 당에 있어서 인민의 목소리라면 어느것이나 흘려들을것, 스쳐지날것이 없었고 그것은 무엇이나 다 인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일감으로 되였으니 바로 여기에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를 생명으로 하는 우리 당의 본태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며칠후 로인은 구월산으로 떠나게 되였다.이른아침부터 아이처럼 좋아하며 들썩이던 그가 뻐스에 오르는 순간 한 일군이 그의 손에 지팽이를 들려주었다.등산길에 혹 넘어질가봐 힘들 때마다 의지하라고 우리
들놀이가는 자식의 려장을 차려주듯 정성을 고인 밥곽까지 실어주며 즐겁게 휴식하고 돌아오라고 일군들이 손저어 바래줄 때 로인은 그만 오열을 쏟고야말았다.참관길에는 수재민들보다 그들을 부축해주며 돌보아주는 안전원들과 보호자들이 더 많았다.
참관지에서 돌아온 날 호실에 들어서던 로인은 새 샘물통을 가져다놓는 처녀관리원에게 《아직 절반이나 있는데 또 교체를 하다니…》라고 말하며 만류했다.그러자 그는 《할머니, 매일 수백리를 가서라도 새 샘물을 수재민들에게 공급해주라는것이 우리
수재민들을 돌보는 어머니당의 사랑은 이렇듯 나날이 극진해졌다.
지난해 10월중순 경공업성 신발공업관리국의 한 일군이 호실로 들어섰다.알고보니 겨울신발을 만들어주기 위해 해당부문의 일군들이 매 호실을 돌며 1만 수천명에 달하는 수재민들의 발을 몽땅 잰다는것이였다.
《발을 재다니? 학생들에게 교복을 해입히기 위해 몸재기를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발까지 잰다는 소린 처음이웨다.》
량강도
영예군인의 눈가에 불시에 눈물이 고여올랐다.아직은 평생 함께 살아온 안해도 자기의 발을 그렇게 세심히 살피며 재여본적이 없었다.
며칠후 난생처음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받아안은 영예군인은 어린애마냥 새 신발을 가슴에 품어안고 몇번이나 꼭같은 말을 곱씹어외웠다.
《우리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1만 3천여명의 수재민들 누구에게나 있고 130일동안 매일같이 태여났다.
아마도 수재민들을 위해 누구보다 수고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기동의무대, 기동봉사대 성원들과 조선인민군 군의부문의 군인들일것이다.
수재민들이 류숙하고있는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에 있는 두개의 진료소는 말이 진료소이지 사실상 병원이나 다를바 없었다.
보건성과 평양시안의 위생방역기관, 치료예방기관들의 강력한 의료진으로 무어진 기동의무대는 우리 나라에서 력사상 처음으로 조직되였다.
1만 3천여명에 달하는 수재민들의 주민건강관리부가 부류별로 구비되여있는 진료소에서, 중앙급병원을 비롯한 평양시안의 치료예방기관들에서 극진한 치료를 받으며 수재민들은 누구나 젊어지고 건강해졌다.
진료소에서, 때로는 매 호실마다 찾아다니며 로인으로부터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빠지고 불편한 이발이 있을세라 세심하게 치료해준 치과의사들의 그 정성은 얼마나 지극했고 환자를 위해 자기의 피까지 서슴없이 뽑은 의료일군의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사심없는것이였던가.
사랑하는 혈육을 잃고도, 젖먹이 어린 자식을 남에게 맡기고도, 자기자신이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할 몸이였어도 기동의무대 의료일군들은 언제나 수재민들앞에서 밝게 웃었다.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그들의 가슴을 끓이는 생각은 오직
그들뿐이 아니다.당에서 안겨준 붉은 파견장을 가슴에 안고 인민사수전에 나섰던 세해전 그날처럼 어머니당의 뜻을 받들어 수재민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하여 친혈육이 되여준 림춘추명칭 군의대학 교원들과 학생들의 소행은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어느날 신의주시의 한 할머니가 눈물이 글썽해서 교원을 찾아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소.내 80평생에 처음 보는 일이웨다.》
평양에 온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로환으로 불편해하는 로인의 곁에서 밤을 밝히다싶이 하던 처녀군대가 어느날 깜빡 쪽잠에 들었을 때였다.친손녀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지극한 정을 기울이는 애어린 처녀에게 제 옷이라도 덮어주고싶어 할머니는 조용히 일어났다.그런데 글쎄 잠든줄 알았던 처녀가 어느새 일어서는것이 아닌가.
수해때 입은 상처때문에 고생하는 한 로인을 위해 서슴없이 자기 피부를 떼주고 해수욕을 하고싶어하는 장애자로인의 마음을 헤아려 성큼 바다물속에 그를 업고 들어간 군의부문 의료일군들에 대한 이렇듯 감동깊은 이야기들은 미처 다 꼽을수 없다.
없는것이 없는 그 류다른 주민지구에는 평양산원에서 퇴원하는 산모들을 위해 특별히 꾸려놓은 산모호실도 있다.
우리 녀성들의 친정집인 평양산원에서 40여일간이나 산후몸조리를 하고 숙소의 산모호실에 들어섰을 때 그들을 기다린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애기젖병, 아동손수건, 애기포단, 애기업개를 비롯한 어린이용품이였다.그속에는 애기침받치개까지 있었으니 정녕 이렇듯 세심한 손길, 자애로운 사랑을 이 세상 그 어디서 찾아볼수 있으랴.
흔히 산모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면 축간다고 했는데 우리 피해지역의 애기어머니들은 오히려 더 환해지고 몸이 좋아진다며 격정을 금치 못하던 피해지역 로인들의 목소리가 뜨겁게 되새겨진다.
그 나날 수재민들에게는 50여명의 새 식구가 늘었고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심장수술을 받고 두번다시 태여났다.
피해지역의 수백명 아이들을 온 병원이 떨쳐나 맞고보내던 잊지 못할 나날을 추억하며 옥류아동병원의 일군은 이렇게 진정을 토로하였다.
《새 심장을 받아안은 자식과 함께 궁전같은 새집에 들어서게 되였으니 재난속에서 쌍복을 받아안은 자기들은 진정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격정을 터치던 그 목소리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우리
지난해 10월
자기들을 금방석에 앉혀 온갖 복락을 다 누리도록 해주시고 자신께서는 수재민들에게 안겨줄 희한한 새 보금자리를 위해 험한 길을 앞장서 헤쳐가시니 정녕 잠이 오지 않았다.수재민들은
《여러분에게는 이같이 성대한 환영과 극진스러운 봉사를 받을만한 응당한 권리가 있으며 우리 당과 정부에는 공화국령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한 성장을 전적으로 맡아 보장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대한 환영과 극진스러운 봉사를 받을만한 응당한 권리!
이것은 걱정없이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더 먼저 품어주고 위해주시는
수재민들은 특별귀빈이 되여
수재민들의 친부모, 친자식이 되여 마음속에 한점 그늘도 비끼지 않게 정성을 다해 섬기고 성심을 다해 보살펴주는 그런
오직 한마음 당을 받들어 애국충성의 한길을 변함없이 이어갈 맹세로 가슴끓이며 수재민들은 한결같이 진정을 토로하였다.
우리는 공산주의사회에서 남먼저 살아보았다고, 공산주의건설의 선구자가 되겠다고!
* *
당중앙뜨락의 우리 집, 우리 학교를 가슴에 안고 수재민들이 천지개벽된 정든 고장에 새 보금자리를 폈다.
모든것을 바쳐
세상에 오직 한분 우리
대를 이어 그 품만 따르고 받들며 하늘땅 끝까지 가고가리라.
본사기자 조향선
본사기자 오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