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 《로동신문》 4면
공훈기술자 안덕성동무
만수대창작사 실장 공훈기술자 안덕성동무의 집에는
그가 김책공업종합대학 박사원을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에 배치된것은 20여년전 어느날이였다.그날 그는 평범한 로동자의 자식을 평양제1중학교와 대학과정을 거쳐 영광의 일터에 세워준 당의 믿음과 사랑에 어깨가 무거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고 그럴수록 높은 사업실적으로 보답할 결의로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그는 하루하루를 불같이 살았다.생소한 분야에 하루빨리 정통하기 위해 언제 낮과 밤이 바뀌는지 몰랐다.피타는 노력끝에 처음으로 어느한 기계제작에 크게 이바지하였을 때의 기쁨을 어디에 비길수 있었으랴.
그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분발하였다.한해두해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사색과 열정이 비낀 창조물들이 전국각지에 수많이 일떠섰다.그는
그 창조물들을 보면서 안덕성동무는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였다.
그 나날 그는 발명권 4건을 비롯하여 80여건의 과학기술증서를 수여받았으며 10여명의 기술자들을 양성하였다.
이런 안덕성동무에게 어머니당과 조국은 2012년 3월 공훈기술자의 영예를 안겨주었다.그리고 여러 경축행사 대표로 불러주었으며 지난해에 또다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
공훈뜨락또르운전수 리동주동무
강서구역 청산농장 뜨락또르운전수 리동주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40여년간 농장에서 일하였다.
한생을 농장에서 일해오고있는 그의 가슴속에는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영광의 고장에서 일한다는 남다른 긍지가 간직되여있다.
하기에 그는 농장에 첫 자욱을 내짚은 그날부터 고향땅에 성실한 땀을 묻으며 포전에서 살다싶이 하였다.매 영농공정에 따르는 농사일에 뼈심을 들인 결과 그는 짧은 기간에 오랜 농장원들도 혀를 차는 실농군이 되였다.맡은 일에 대한 그의 높은 책임성과 깐진 일본새는 뜨락또르운전수로 일할 때에나 그후 분조장이 되여서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 10여년간 여러대의 뜨락또르와 농기계의 가동과 관리를 책임진 분조장으로 일하면서 그가 걸은 길, 지새운 밤은 얼마인지 모른다.
뜨락또르에 이상이 생기면 제때에 수리할수 있게 예비부속품을 미리 마련해놓았고 합리적인 기술혁신안을 창안하고 받아들여 가동률을 높이였으며 여러명의 운전수도 양성하였다.
다른 뜨락또르운전수들도 무쇠철마의 진짜주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기울인 헌신이 있어 그들이 담당한 작업반은 해마다 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다수확작업반의 영예를 빛내일수 있었다.이렇듯 지난 수십년간 고향을 더없이 사랑하고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맡은 일에 애국의 구슬땀을 바친 리동주동무가 2022년에 공훈뜨락또르운전수의 영예를 지니였을 때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본사기자
공훈건설자 리용운동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한생 기념비적창조물건설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는 사람들속에는 속도전청년돌격대 제2려단 5대대 리용운동무도 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대상건설에 참가하여 누가 보건말건 애국의 땀을 묵묵히 바치였다.
새 철길건설장들과 청년영웅도로 그리고 려명거리, 림흥거리를 비롯한 살림집건설장…
늘 집을 떠나 건설장에서 살다싶이 하는 직업은 결코 말처럼 헐한것이 아니였다.때로는 힘들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다른 직업을 택하지 않고 자기의 초소를 꿋꿋이 지켜왔다.
당의 웅대한 구상에 따라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조국의 재부, 시대의 기념비로 일떠선 창조물들에 자기의 성실한 땀과 노력도 스며있다는 건설자의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안고 그는 먼길을 웃으며 변함없이 걸어왔다.
오늘도 그는 돌격대에 입대하여 어느한 공사에 참가하여 로력적위훈을 세워 처음으로 공로메달을 받았을 때를 잊지 못하며 즐겁게 추억하고있다.
그후 그의 가슴엔 훈장과 메달이 하나둘 늘어났다.그때마다 보답의 일념으로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고 일욕심도 많아졌다.
용접과 목공작업 등 그는 무슨 일에서나 막힘이 없었고 여러건의 기술혁신을 하여 맡은 공사들을 앞당기는데 적극 기여하였으며 10여명의 기능공들도 양성하였다.
하여 그는 2022년 12월 공훈건설자의 영예를 지니였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