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9일 수요일  
로동신문
당적량심에 대한 이야기
작업반장의 체험중에서

2025.1.27. 《로동신문》 3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원들은 언제나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안고 혁명과업수행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선봉투사가 되여야 합니다.》

얼마전 황해북도에 대한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일 잘하는 작업반장으로 소문난 사리원시상하수도난방사업소 박충혁동무를 만났다.

그는 뜻밖에도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새세대 당원들이 어떤 당적량심을 간직하고 어떻게 빛내여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있다.

* *

아침작업조직이 갑자기 달라졌다.작업반원들은 전날 저녁까지 닷새동안 상수도공사를 진행한 장소로 다시 달려갔다.

관에서 물이 뿜어져나와 땅이 질벅질벅했다.그속에서 작업반원들은 물참봉이 되여 재작업을 하였다.

《이게 도대체 누구 소행이요?》

누군가의 격한 목소리가 울렸다.사업소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박충혁동무는 속이 조마조마했다.분명 자기가 관을 늘인 구간이였다.

하나의 무게가 수백㎏ 되는 철관들을 늘이고 물이 새지 않게 련결부위를 세멘트와 돌솜을 섞어 다지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마침내 주민들에게 생활용수를 충분히 공급할수 있게 되였다고 작업반원들모두가 힘을 내던 그 시각 박충혁동무는 제 생각에만 옴해있었다.이런 힘든 일을 일생토록 한다는것이 간단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있다나니 그만 일을 설치였다.거기서 사달이 난것이였다.

《당원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일하다니…》 하는 지청구가 금시 들려오는듯하였다.

자기가 일을 걸써하게 하여 재작업을 하게 한데 대하여 그는 모두에게 량해를 구하였다.하지만 내심으로는 자신을 크게 반성하지 않았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사업소는 일부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먹을알있는 단위》나 《헐한 단위》가 아니였다.반대로 명절, 휴식일이 따로없이 눈비를 다 맞으며 일해야 하는 힘든 초소였다.그러나 그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되면서 이곳을 택하였다.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당부도 있었지만 어렵고 힘든 일터에 자신을 세움으로써 입당할 때 다진 맹세를 지키겠다는 자기딴의 결심도 있었던것이다.

(힘든 곳에 스스로 찾아왔는데 그쯤한 실수가 대수인가.)

그는 자신을 이렇게 위안하였다.

박충혁동무로 하여금 자기 생각을 랭철하게 돌이켜보게 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당세포비서 조영철동무와 한조가 되여 원주동의 한 지구에서 규격이 큰 비닐수도관을 설치하던 때였다.

개개의 관들을 수십m나 접합한데 이어 T자로 된 관과 련결해놓으면 당장 퇴근을 할 판인데 30㎝정도 관이 남았다.작업을 빨리 마무리할 생각으로 그 부분을 절단하려는 찰나 관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나오던 당세포비서가 급히 제지시켰다.

한동안 관을 쓸어만지던 그는 작업이 진행되는 수백m구간 어딘가에 그만큼 모자라는 곳이 있을수 있다고 하면서 힘들어도 관들을 뒤로 밀자고 하였다.

쭉 련결된 관을 두 사람의 힘으로 밀어낸다는것이 간단치 않았다.어둠속에서 땀을 흘리며 한치 또 한치 관을 밀어내는 박충혁동무의 뇌리에는 자기들의 고생을 누가 알기나 할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윽고 관을 T자관과 련결하고 땅에 묻게 되였을 때 당세포비서는 정확성여부를 손전지로 거듭 확인하고나서 비닐관웃면에 자기가 한 일을 책임지는 의미에서 《ㅈ》자를 썼다.오래전부터 생긴 습관이라면서 그는 이렇게 거듭 확인한 손때묻은 관들에서 지금까지는 이상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불쑥 박충혁동무의 눈앞에는 사업소의 사무실에서 보았던 시안의 관로망들을 표시한 략도가 떠올랐다.시의 곳곳에 그물처럼 뻗어있는 그 관들에 당세포비서가 새긴 표식이 적지 않을것이였다.많은 사람들이 그우를 지나다니면서도 그것을 모를것이라고 생각하니 허무하고 분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며칠후 당생활총화때 당세포비서는 자신을 비판했다.저녁어스름속에서 관늘이기작업을 할 때 일순간이나마 편안을 먼저 생각하면서 관을 토막낼번했다고.

박충혁동무는 부끄러워났다.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었다.그는 당세포비서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처럼 깨끗한 량심을 묻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하긴 당세포비서야 자기의 언행과 실천으로 군중을 교양할 임무를 지니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은 얼마후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당원 김광철동무와 근무를 함께 서던 명절날이였다.명절이라고 더욱 각성하여 담당지구를 돌아보던 김광철동무는 어느한 망홀에서 오수가 넘쳐날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였다.

그는 마주오는 중학교시절의 동창생녀성과 눈길이 마주칠가봐 몸을 반쯤 돌리고 선 박충혁동무에게 공구를 넘겨달라고 하고는 서둘러 준첩복을 입고 망홀에 뛰여들었다.허리까지 치는 물속에서 막힌 구멍을 뚫는 일에 얼마나 열정을 쏟아붓는지 밖에서 거들어주는 박충혁동무가 미처 교대할새도 없었다.

드디여 오수가 쭉쭉 빠지기 시작하자 망홀우에 올라앉은 김광철동무는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시민들로 흥성이는 거리를 바라보며 혼자말처럼 조용히 뇌이였다.

《우리가 흘리는 이런 땀보다 귀중한것이 또 있을가?!》

그 말이 이상하게도 박충혁동무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한사람만이 아니였다.리정만, 류순기동무를 비롯하여 작업반의 다른 당원들과 일할 때에도 그들의 보석같은 량심은 박충혁동무의 마음에로 흘러들었다.

박충혁동무는 그들을 본따려고 노력했다.하지만 결코 헐치 않았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하수도의 멘 구간을 뚫는 작업이 끝난 후 그는 힘들다는 생각 하나에만 포로되여 공구들을 창고에 대강 넣어두었다.

그런데 작업반장 리광일동무의 눈에 띄웠다.작업반장은 몹시 노여워하였다.그는 공구들을 비누물로 하나하나 씻으며 신칙했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동무의 아버지 박찬화동지는 세 아들을 이곳 사업소에 대를 이어 세울것을 그렇게 원했다누만.맏이와 둘째의 뒤를 이어 동무가 이 사업소에 들어설 때 종업원들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네.헌데 거리가 있는것같애!》

그러면서 작업반장은 공구관리에서나 작업에서나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모범이여서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였다.

박충혁동무는 사업소의 연혁소개자료들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보던 일이 되새겨졌다.

1980년대에 작업반원들과 함께 작업현장에서 웃고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은 어려운 일터에 서있다는 자부만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보석같이 빛내여가는 깨끗한 당적량심으로 하여 그리도 긍지스러운것이였다.

박충혁동무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 분발하였다.그 과정에 그는 린접작업반의 당세포비서를 거쳐 오늘은 작업반장으로 성장하였다.

* *

우리와 헤여질 때 박충혁동무는 말하였다.

《일터나 직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적량심에 얼마나 떳떳하게 일하는가에 따라 당원의 진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새길수록 참으로 여운이 깊은 말이였다.

본사기자 리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