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3. 《로동신문》 5면
《우리 당과 국가정책의 제1순위는 언제나 후대들을 위한 시책이며 이것은 조선로동당의 절대불변의 원칙, 영원한 국책으로 될것입니다.》
조국의 최북변 라선시 선봉구역에는 우암동이라는 곳이 있다.
수도 평양에서부터 시작되는 나라길은 두만강의 푸른 물결과 동해의 흰 파도가 합쳐지는 이곳에서 끝나게 된다.
우암동소재지에서도 퍼그나 떨어진 토리마을은 주민세대수가 불과 30여세대인 작은 마을이다.선봉연료사업소 우암농축산물생산분사업소 종업원들과 그 가족들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그러던 이곳에 오늘은 하루도 번짐없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바로 마을의 몇명 안되는 아이들을 위한 젖제품운반차이다.
지금으로부터 몇해전 어느날 토리마을은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당의 은정깃든 젖제품운반차가 마을에 도착한다는 소식에 접했던것이다.
온 마을사람들이 떨쳐나 이제나저제나 동구길너머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때 《보인다!》라고 하는 누군가의 환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후 자동차에서 내린 선봉어린이식료공장 지배인 전광호동무는 삽시에 마을사람들속에 에워싸이였다.
몇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젖제품을 먹이기 위해 젖제품운반차가 매일 수백리길을 하루도 번짐없이 오가게 된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전해듣고 마을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마을이 생겨 언제 이런 희한한 일이 있어보았던가.
그날 사랑의 젖제품을 받아안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물론 마을사람들모두가 저 멀리 평양하늘을 오래도록 우러렀다.
토리마을에서 평양까지는 수천리, 허나 지리적으로는 멀고 가까운 곳이 있어도 자신의 마음속에는 멀고 가까운 인민이 따로 없다고 하시며 힘든 자식, 멀리에 있는 자식일수록 더 마음을 쓰고 더 따사로운 손길로 품어안아 보살펴주시는
그날부터 젖제품운반차를 반겨 맞이하는것은 이 고장 사람들의 변함없는 일과로 되였다.
여러해가 지나면서 이제는 단 세명의 어린이들이 젖제품을 받아안고있지만 100여리에 달하는 운행길에는 변함이 없다.
그 나날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젖제품공급단위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 기울인 남모르는 헌신을 어찌 한두마디 말로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몇달전 어느날이였다.
그날은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쳐 앞을 가려보기가 어려웠다.
마을사람들은 이런 강추위에는 젖제품운반차가 퍽 늦어지거나 혹시 오지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져 동구길쪽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던 중낮무렵이였다.하얀 눈을 뒤집어쓴 젖제품운반차가 귀에 익은 경적소리를 울리며 마을에 들어서는것이였다.
마을사람들은 한달음에 달려가 운전사에게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젖제품을 하루쯤 못먹는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습니까.》
허나 토리마을사람들이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우리 아이들에게 하루도 번짐없이 젖제품을 먹여야 한다는것은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튼튼하게 잘 키우는것보다 더 중차대한 혁명사업은 없으며 수천수만금을 들여서라도 보다 개선된 양육조건을 지어주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최중대정책이고 최고의 숙원이라고 하시며 몸소 아이들에게 안겨줄 젖제품의 맛까지 보아주신
정녕 이날 토리마을에 펼쳐진 광경은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하기에 오늘 토리마을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고있다.젖제품운반차가 실어나르는것은 단순한 우유가 아니라고, 그것은 불보다 더 뜨거운 우리 당의 사랑이라고.
지난 몇해동안 젖제품운반차가 토리마을을 오고간 거리를 합하면 수십만리에 달한다.
북변의 외진 산골마을아이들과 수십만리 젖제품운반길,
눈비가 내리고 뙤약볕이 내려쪼여도 하루의 멈춤도 없이 달리는 그길을 어찌 리정으로만 계산할수 있으랴.
정녕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온 나라 방방곡곡 그 어디에나 뻗어있는 젖제품운반길은 후대들을 위한 우리 당의 뜨거운 정이 자욱마다에 어린 끝없는 사랑의 길이다.
본사기자 유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