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5. 《로동신문》 4면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의 영예를 지닌 림봉호동무는 지난 10여년간 막장조건이 매우 불리한 곳에서 운반공, 채탄공을 거쳐 청년소대 소대장으로 일해오고있다.
그 나날 그는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소대원들을 이끌어 해마다 소대앞에 맡겨진 석탄생산계획을 120%이상 넘쳐 수행하였으며 5개년계획수행기간 휴식일과 교대이후 수백t의 흘린 탄을 수집하여 석탄증산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고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고생을 달게 여기며 청춘시절을 바친 보람찬 자욱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인생의 재부가 되고 후대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으로 될것입니다.》
10여년전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림봉호동무는 인민군대에 입대할것을 열렬히 희망했다.하지만 그는 이미전에 상한 팔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헤아려본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군복을 입지 못해도 나라를 위해 젊은이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고, 아마도
5월1일경기장건설장에 남먼저 탄원하여 로력적위훈을 세운
하여 그는 탄부가 되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남달리 일욕심이 강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림봉호동무는 막장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여 집단의 사랑을 받게 되였으며 몇해후에는 청년소대의 소대장이 되였다.
하지만 나이도 로동년한도 어린 그가 각이한 성격과 생활경력을 가진 소대원들을 이끈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얼마 안되는 소대원들의 마음도 하나로 합치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이전처럼 자기 혼자 일을 잘해서 혁신자로 떠받들리우는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길 때도 없지 않았다.그때마다 사업소일군들과 청년동맹일군들은 집단을 외면하고 혼자 혁신자가 되겠다고 하는것은 당이 바라고 시대가 부르는 애국청년의 모습이 아니라고 일깨워주군 하였다.
자기만을 위한 쉬운 길을 택하려 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그는 소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해 자기의 진정을 다 바쳐나갔다.
하루일을 끝마친 후에는 신병으로 앓는 사람이나 가정사정으로 마음속그늘을 안고있는 소대원들의 집을 찾기도 하였고 집단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 하는 부모잃은 청년을 친혈육의 정으로 보살펴주며 꾸준히 교양해나갔다.
애젊은 나이에 한개 청년집단을 책임지고 모든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세운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지만 그는 우리 당이 바라는 진정한 애국청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운 일도 기어이 해내야 한다는 일념을 안고 그렇듯 뜨거운 진정을 아낌없이 기울이였다.
결과 집단안에는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집단주의정신이 차넘치게 되였고 어제날 말썽군으로 불리우던 청년들까지도 어려운 일감이 제기되면 남먼저 발벗고나서는 혁신자로 성장하였다.
당 제8차대회이후 림봉호동무는 높아진 생산계획을 수행하느라 막장에서 살다싶이 하는 속에서도 소대원들을 불러일으켜 짬짬이 흘린 탄을 수집하였으며 지난해에는 굴진과 채탄을 다같이 밀고나가면서 5월말까지 소대앞에 맡겨진 년간 석탄생산계획을 앞당겨 완수함으로써 사업소적인 석탄생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림봉호동무는 사소한것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특혜도 바란적이 없다.
그의 안해가 림봉호동무와 가정을 이룬 후부터 사업소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하고있다는 사실만 놓고보아도 집단을 위해서라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의 각오가 얼마나 투철한가를 잘 알수 있다.
두해전 새 탄밭을 확보하기 위한 갱건설이 시작되였을 때였다.
사업소적으로 청년돌격대가 조직된다는것을 알게 된 림봉호동무는 제일먼저 탄원해나섰다.낮에 밤을 이어 암석굴진을 해나가는 청년돌격대원들의 앞장에는 언제나 림봉호동무가 서있었다.
어렵고 힘든 일터는 우리가 설 자리라고, 위훈이 없이야 어찌 값높은 청춘시절에 대해 말하겠는가고 하며 힘과 용기를 북돋아준 그의 헌신적노력이 있어 불과 10명밖에 안되는 청년돌격대원들은 10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백m의 굴진을 결속하고 사업소가 석탄생산을 정상화할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을수 있었다.
그때 청년돌격대적인 혁신자로 소문이 자자했던 강동무가 바로 림봉호동무가 친동생처럼 여기며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준 어제날의 말썽군이였다니 이 얼마나 자랑할만한 일인가.
이렇듯 림봉호동무는 지난 10여년간 어렵고 힘든 일에 언제나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돌파구를 열어나가는데서 청춘의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찾았다.하기에 우리 당에서는 그를 온 나라가 다 아는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