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8. 《로동신문》 6면
《우리 농업근로자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당과 뜻을 같이하고 사회주의와 운명을 함께 하면서 농촌의 혁명진지를 굳건히 지키고 쌀로써 당과 혁명을 보위해온 충직하고 애국적인 근로자들입니다.》
평원군 송화농장 농장원인 송영길동무의 가정에는 오랜 세월 정히 보관하고있는 두개의 휘장이 있다.그의
《이 천리마휘장들은 우리가 누구들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없이 깨우쳐주고있습니다.》
얼마전 우리와 만난 송영길동무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의
언제인가 작업반의 한 포전이 돌이 많아 밭갈이가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였다.
그후 작업반은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지금도 국가적인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가슴에 단 천리마휘장을 쓸어보던
송영길동무의 추억깊은 목소리였다.그의
어머니 역시 천리마기수이며 소문난 실농군이였다.송영길동무의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농장을 위하여 일을 더 잘하겠는가 하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였다고 한다.그러기에 누구도 시키는 사람은 없었지만 포전에 나갈 때에는 언제나 두엄을 한짐씩 지고나갔고 농장에서 제일 여윈 소를 자진하여 맡아 정성껏 먹이여 한해 여름동안에 제일 살지고 힘쓰는 소로 길러냈다.장마때면 밤에도 자지 않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서 지고다니면서 동이나 논뚝의 터지려는 곳을 보수했고 바람에 넘어지려는 곡식대를 일으켜세웠다.이제는 년로보장을 받은지도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천리마기수의 일솜씨는 여전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때 전 고향을 뜰 생각을 하였답니다.》
제대를 앞두고 그는 온 가정이 농사를 짓는데 자기 하나쯤은 다른 부문에 가서 일을 해도 되지 않을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를 노엽히게 될줄이야…
자식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고향땅에 든든히 뿌리내리기를 바랐던것이다.
며칠후 송영길동무는 편지를 받았다.편지에는 농촌청년들이 고향땅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자기의 향토를 사회주의리상촌으로 건설하라는것이 당의 뜻일진대 어떻게 새세대 청년이 자기 고향을 뜰 생각을 하는가라는 엄한 질책과 함께 부디 천리마기수의 아들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있었다.
자기를 뉘우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부모의 뜻대로 농장원이 되였다.
전세대가 지녔던 넋이 아무리 고귀한것이라 할지라도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허한 울림으로 흩어진다.하지만 그것이 억세게 이어진다면 아름다운 생의 메아리가 되여 끝없이 울려퍼지게 된다.
송영길동무는 부모의 넋이 어리고 땀이 슴배인 포전을 가꾸어나갔다.땅을 기름지게 걸구기 위해 소석회와 흙보산비료 등을 마련해가며 아글타글 노력했다.지쳐 주저앉고싶을 때에도 그는 두개의 천리마휘장을 떠올리며 용기를 가다듬군 하였다.일본새도, 생각하는 품도 어쩌면 송화리의 첫 천리마작업반장이였던
알고보니 그의 안해 역시 실농군이였다.맡은 포전을 알심있게 가꿀뿐 아니라 다른 농장원들의 농사일도 진심으로 도와나서군 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역시 천리마기수의 며느리가 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년로보장을 받은 송영길동무의 맏누이도 어머니와 함께 농장일을 돕고있으며 현재 농장원인 둘째누이도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있었다.
진정 그들 한명한명이 천리마휘장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며 량심을 바쳐가고있는 실농군들이였다.
우리에게 송영길동무는 말했다.
《천리마기수였던
이것은 그만이 아닌 형제들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전세대가 지녔던 넋을 피줄기로 굳건히 이어가는 새세대들에 의해 이 땅에는 천리마의 력사가 계속 흐르고있다는것을 우리는 한 실농군가정에 대한 취재길에서 다시금 절감하였다.
본사기자 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