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3. 《로동신문》 4면
위훈의 70년대를 추억할 때면
1970년대에 연공으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작업반장이였는데 우리 작업반원들속에는 어려운 일감을 놓고 눈치를 보거나 뒤에서 어물거린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물론 지금보다 경험도 부족했고 기계설비도 현대적이지 못했다.하지만 당에서 준 과업을 무조건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소성로의 숨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못해낸 일이 없었다.
지금도 소성로를 시급히 보수해야 할 과업이 나섰을 때 채 식지 않은 로에 서슴없이 뛰여들던 작업반원들의 모습, 지혜를 합쳐 백수십t에 달하는 중량물을 통채로 들어내려 보수기일을 앞당기던 나날이 눈앞에 생생하다.
정말이지 나의 한생에서 1970년대는 위훈으로 가득찬 가슴벅찬 나날이였다.
비록 지금 나는 젊은 시절처럼 고공작업은 하지 못한다.하지만 새세대들에게 전세대들의 정신과 넋을 굳건히 물려주어야 하겠기에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오른다.
보수직장 연공작업반 고문 로력영웅 공경묵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기업소에 제대배낭을 푼 때로부터 4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이 나를 80년대의 당세포비서아바이라고 정답게 불러줄 때면 기적과 위훈으로 가슴벅찼던 그 시대의 우리 세포당원들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군 한다.
정말이지 그때는 현장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다.누구나 늘 공구함을 가지고다녔고 소성로에 일단 문제가 생기면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높은 예열탑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가군 하였는데 그 앞장에는 언제나 당원들이 있었다.
로보수를 위한 당원협의회가 진행될 때면 당원들은 이렇게 웨치며 자리를 차고 일어서군 했다.
정말이지 소성로의 동음을 생의 박동처럼 소중히 여기며 늘 드바삐 뛰여다니던 1980년대 당원들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정다운 일터를 새세대들과 함께 끝까지 지켜가겠다.
소성직장 수리1작업반 수리공 최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