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많은 인생을 안아 영웅으로 키워준 위대한 품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 진응원동지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
2023.3.30. 《로동신문》 2면
자식 하나를 키우는데 오만자루의 품이 든다는 말이 있지만 인생행로와 생활경위도 다르고 곡절많은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까지도 모두 한품에 안아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것은 참으로 어렵고 중대한 사업이다.
어머니 우리당!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그 품이 있기에 천대와 멸시를 숙명으로 간주하고 무지렁이처럼 살던 사람들이 시대와 력사를 떠밀고나가는 혁명가로 자라났고 파란많은 인생길에 응어리졌던 가슴들에도 재생의 꽃이 만발하지 않았던가.
천리마시대와 더불어 우리 혁명사의 자랑스러운 갈피에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 로력영웅으로 당당히 그 이름을 빛내이고있는 진응원동지도 그 수많은 사람들가운데 한사람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덕정치, 광폭정치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돌보듯이 인민들을 차별없이 대해주고 따뜻이 품어주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며 인민들을 당의 두리에 하나로 묶어세우는 혁명적단결의 정치입니다.》
온 나라를 거세찬 전진과 활력으로 끓어번지게 하던 전후의 그 격동적인 시기로부터 어느덧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진응원동지의 운명에서의 극적인 전환은 오늘도 우리모두에게 가르치고있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사랑과 믿음의 품이 영웅적인민을 키우고 영웅의 시대를 펼치며 영웅의 나라를 일떠세운다.
《동무들은 아주 귀중한 사람들이요》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영화의 얼굴, 기념비적대걸작이라고 높이 평가하신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로동계급편)은 떡쇠나 파철도 전기로에만 들어가면 다 쇠물이 된다는 쇠물철학을 감명깊고 진실하게 보여주고있다.
진응원동지가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로까지 되는 예술영화의 형상은 결코 창작가의 허구가 아니다.바로 여기에 못난 자식,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더 걱정하고 마음을 기울이는 친부모와도 같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넓고 따사로운 사랑의 품에 안겨 영광의 삶을 누려온 진응원동지의 남다른 인생사가 그대로 비껴있다.
주체48(1959)년 2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제강소(당시)를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천리마대진군운동의 첫 봉화를 든 제강소답지 않게 떠도는 공기가 예전과 다르다는것을 간파하시였다.언제나 한달음에 달려와 기세찬 어조로 강재생산정형을 보고드리군 하던 지배인의 어깨가 축 처져있는데다가 일부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협의회에서 제대로 대답도 못드리는것이였다.
이미전에 벌써 강선제강소에서 나타나고있는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하여 알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를 마치시고 이어 제강소당열성자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부 일군들이 반혁명과의 투쟁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성분만 쓸데없이 따지고 지식인이 어떻소, 귀환병이 어떻소 하면서 사람들을 함부로 의심한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반혁명과의 투쟁에서 지식인이 어떻소, 귀환병이 어떻소 하면서 덮어놓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의심하는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통일단결을 방해하는 행동이다.
못내 격하시여 나타난 편향을 지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은 몹시도 쓰리고 아프시였다.
우리 조국의 수난의 력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왔고 남모르는 마음속고충을 겪고있는것인가.당에서는 그들을 또 얼마나 애지중지 돌보며 귀중히 여겨온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실수록 자신께서 너무도 잘 알고계시는 한 용해공의 얼굴이 눈앞에 안겨오고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이후 강선을 찾으시였던 그날의 일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르시였다.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눈발속을 뚫고오신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회의장 하나 변변한것이 없어 창고를 정리하고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를 들여놓은 너무도 어설픈 곳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로동자들과 무릎을 마주하시였다.
나는 우리 로동계급과 인민들밖에 믿을데가 없기때문에 생각하다 못해 동무들을 찾아왔다, 우리는 오직 우리 혁명의 주력부대인 로동계급을 믿고있으며 당신들밖에 의지할데가 없다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형편에서 강재를 계획보다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같은 호소에 로동자들은 강재는 념려마시라고, 1만t이 아니라 2만t, 3만t이라도 더 생산해내겠다고 자기들의 심정을 열렬히 토로하였다.바로 그때 자리를 차고일어나 이제부터 로중보수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며 용해시간을 2시간 40분 더 단축하겠다고, 그리고 매 중보수때마다 3t의 마그네샤크링카와 10여가마니의 몰탈을 절약하겠다고 그이께 불같이 말씀올린 젊은 용해공이 바로 진응원동지였다.
쇠물마냥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에서 당이 바라는것이라면 어떠한것이라도 무조건 실천해내려는 결사의 의지를 가슴뜨겁게 받아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미덥게 바라보시다가 《동무는 고향이 남이구만.부모님들은 다 계시오?》라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고향은 서울이고 일흔살에 가까운 늙은 어머니 한분이 계신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생활에서 애로는 없는가, 공부는 어떻게 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또다시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믿음과 깊은 정을 담아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에 대한 당의 기대는 매우 크오.동무들은 아주 귀중한 사람들이요.앞으로 일도 잘하고 공부도 더 잘하시오.》
동무들은 아주 귀중한 사람들이요!
이것은 전화의 불길속에서 오직 우리 당만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진정어린 믿음이고 육친적사랑이였다.
믿음은 충신을 낳는 법이다.
강선의 로동계급은 압연능력을 30%나 높이고 강편절단능력을 단번에 2배로 끌어올리였으며 강괴가열시간도 훨씬 줄이고 두대치기도 대담하게 받아들여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마침내 12만t의 강편을 생산하고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의 보고를 올리였다.그 앞장에 진응원동지가 있었다.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그것이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호소에 고무된 강선의 로동계급은 예비를 적극 찾아내여 6만t의 공칭능력을 가진 분괴압연기에서 9만t의 강재를 생산할것을 결의하여나섰으며 영웅적인 투쟁을 벌려 12만t의 강재를 생산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우리의 로동계급은 당과 혁명의 요구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낸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
잊을수 없는 그 나날과 더불어 우리 수령님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진응원동지, 강선로동계급을 그려보실 때마다 정깊이 떠올려보군 하시던 의용군출신의 미더운 용해공이 귀환병이라는 리유로 강철기둥처럼 굳세여야 할 속대에 주눅이 들고 휘청거리고있다는 생각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욱 마음이 아프시였다.그럴수록 그를 처음 만나신 자리에서 동무들에 대한 당의 기대는 매우 크다고, 동무들은 아주 귀중한 사람들이라고 하시였던 말씀도 되새겨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진응원동지를 비롯하여 마음속고충을 안고있던 사람들모두에 대한 하늘같은 믿음을 담아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귀환병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습니다.우리가 귀환병들을 의심하고 따돌리려고 공화국의 품으로 데려온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뜻깊은 교시를 전해들은 진응원동지는 오열을 터치였다.
진응원동지의 눈앞에 해방전 서울에서 자동차수리공, 운전사를 하다가 전쟁시기 의용군으로 인민군대에 입대하던 순간이며 미국놈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심한 부상을 입고 적들에게 포로되여 갖은 고초를 겪던 일 그리고 포로송환때 서울에 떨어질수도 있었지만 결단코 공화국의 품으로 갈것을 결심한 사실이며 강선제강소 용해공, 작업반장으로 일하며 강철생산에서 한몫 단단히 해제껴나가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렇듯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은 자신이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귀환병이라고 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하여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리고 주저하였으니 이 얼마나 불충불효한 인간인가.
진응원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마음속으로 우러르며 이렇게 심장으로 아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믿고 공화국의 품으로 데려오시였는데 오히려 당의 그 믿음에 보답할 대신 동요하고 저울질하였으니 내가 무슨 우리 수령님께서 나라의 기둥으로 내세워주시는 강철로동계급이겠습니까.
어버이수령님, 저의 마음 다시는, 다시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열망을 안고 진응원동지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증산투쟁을 벌렸다.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마음속고충을 내비칠 때마다 어버이수령님의 믿음이면 다지 무엇이 더 필요한가고 하면서 그들을 불러일으키고 집단적혁신을 일으키는 과정에 진응원작업반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일하면서 배우며 생활하는 참다운 집단으로 자라났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제일 기뻐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진응원작업반에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였다.그리고 제1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진응원동지를 불러주시고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진응원작업반이 쟁취한 첫 천리마작업반칭호,
진정 이것은 단순히 강선로동계급의 영웅적투쟁이 안아온 산물이기 전에 한 인간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이 낳은것이다.바로 여기에 우리 수령님께서 펼치신 광폭정치, 인덕정치의 위대함이 있다.
진응원작업반원들이 처음으로 발기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불과 1년반동안에 온 나라에 급속히 확대되여 전국각지에서 8 600여개의 작업반이 이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700여개의 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하였다. 그가운데서 13개의 작업반은 2중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우리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이 땅에 천리마를 떠올렸고 참된 공산주의적인간들의 무수한 대오를 탄생시켰던것이다.
변함없이 빛내여주신 선구자의 삶
사람들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 《장군님식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불행에 감겨 찢겨진 몸을 시름놓고 맡긴 곳은
아 인정의 바다 사랑의 바다
…
이 땅에 열려진 격동의 영웅시대를 노래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거인들로 성장하였는가에 대한 형상적대답이 담겨있다고도 할수 있는 이 노래에 진응원동지의 한생의 체험이 비껴있다.
억센 손에 쇠장대를 든든히 틀어쥐고 천리마대고조의 앞장에서 내달리던 진응원동지의 머리에도 어느덧 흰서리가 내리고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예순번째 생일을 앞둔 때였다.
자식들은 물론 기업소의 일군들까지도 첫 천리마작업반장의 생일상인데 강선이 들썩하게 잘 차려주자고 벼르고있었다.하지만 진응원동지는 전기로앞에서 생산을 지휘하는게 생일을 의의있게 쇠는게 아니겠는가고 하면서 생일상을 받는것을 굳이 마다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평양에서 한 일군이 내려왔던것이다.그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진응원동무에게 보내시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생일상을 전하는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떻게 저의 생일까지 아시고…)
쇠물을 끓이며 화염에 그슬린 장알박힌 손으로 생일상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는 진응원동지의 어깨가 소리없이 떨리였다.그럴수록 그의 눈앞으로는 위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사랑과 믿음속에 흘러온 잊지 못할 나날이 뜨겁게 되새겨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응원동지를 항상 잊지 않으시고 제강소를 찾으실 때마다 그를 몸가까이 불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높은 목표도 제시해주시면서 그의 성장을 걸음걸음 보살펴주시였다.
진응원동지가 생전에 늘 잊지 못해한 날중의 하루는 주체54(1965)년 1월 30일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0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제1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의 높은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날 1강철직장 직장장으로 일하고있던 진응원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제강소당위원회 확대회의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득 장내를 한동안 둘러보시다가 진응원동지를 띄여보시고 《강철직장 영웅 진응원동무!》라고 부르시는것이였다.
순간 모두의 눈길이 진응원동지에게 집중되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진응원동지도 너무도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그럴수록 우리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자기를 강철직장 영웅이라고 불러주시였는지 한가슴에 뜨겁게 미쳐왔다.그것은 첫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쟁취한 천리마선구자, 영웅답게 제1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을 위한 투쟁에서도 제일 앞장에서 달려나가기를 바라시는 믿음이고 기대가 아니겠는가.
하여 진응원동지는 《어떻습니까.동무네가 천리마를 발기하였는데 한번 들이밀어야 합니다.자신있습니까?》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자신있습니다.》라고 주저없이 큰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을 받아안은 진응원동지를 비롯한 강철전사들의 힘찬 투쟁에 의해 제강소는 쇠물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부글부글 끓어번지였다.강선의 로동계급은 천리마를 탄 기세로 전기로를 비롯한 생산설비들을 개건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강철생산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제1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의 강철고지를 앞당겨 점령하고 천리마선구자로서의 영예를 계속 빛내였다.
주체57(1968)년 5월 평양에서는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진응원동지는 이 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주석단에 앉는 영광을 지니였다.
보고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응원동지의 이름을 몸소 불러주시였다.자리에서 일어선 진응원동지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가리키시며 전체 대회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동무가 진응원동무입니다.내가 천리마운동을 발기하자 이 동무가 첫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봉화를 든 동무입니다.》
첫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봉화를 든 동무!
장한 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세워주시는 그 믿음, 그 사랑을 진응원동지는 한생토록 잊을수 없었다.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손에서 쇠장대를 놓지 않았다.
수령을 받드는 전사의 충성심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전사를 위하는 수령의 믿음과 사랑에 어찌 비할수 있으랴.
흐르는 세월은 많은것을 희미하게 하고 망각속에 묻어버린다지만 진응원동지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더욱 뜨거워졌다.
그가 어느한 연회에 참가하여 로동자대표로서 삼가 축배를 올리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견함을 금치 못하시며 연회에 참가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 동무가 천리마영웅이라고 친히 소개까지 하여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 탄생 70돐을 경축하는 전국로동자예술소조종합공연에 참가하여 삼가 꽃바구니를 올리였을 때에는 《아, 진응원동무로구만! 고맙소, 고맙소.》라고 하시며 따뜻이 격려해주시였고 또 언제인가는 쇠물을 다루는 전사의 손목에 은정어린 시계까지 채워주시였다.
…
끝없이 베풀어지는 이 은혜를 어떻게 하면 다 갚는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아안은 그날 진응원동지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옷깃을 여미고섰다.
《어버이수령님!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온 저를 한품에 안아 키워주시고 온 나라가 다 아는 천리마영웅으로 내세워주신 그 은덕만도 대해같은데 갈수록 더해만지는 이 사랑을 어떻게 하면 다 갚을수 있단 말입니까.
로앞에서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강철생산에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 결의대로 진응원동지는 늘 로앞에 붙어살다싶이 하였다.자신뿐 아니라 새세대 용해공들도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일해나가도록 늘 마음을 기울이였다.
이렇게 더 많은 강철증산으로 당을 받들 일념으로 로앞을 떠날줄 모르던 진응원동지는 그만 건강이 악화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이를 보고받으시고 못내 걱정하시며 그의 건강을 보살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대고조시기에 첫 천리마작업반장이였으며 로력영웅인 강철종합직장장 진응원동무가 병원에 입원해있다는데 건강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구체적인 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 령도자가 이름없던 한 용해공을 위해 이렇듯 사랑과 정을 기울였다는 이야기가 새겨진적 있었던가.오직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 나라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아니랴.
그날 진응원동지는 병원에 찾아온 가족들과 마주앉았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음을 자제하느라 동안을 두었던 진응원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어버이수령님앞에 죄스러운것이 하나 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전기로앞에 다시 오실 때 수령님앞에 대를 물려 내세울 아들을 키우지 못한것이다.어째서인지 요즘엔 이 생각이 자주 들군 해서 잠도 설치게 된다.…》
그 순간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다가선것은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한 맏아들 진영일동무였다.
《아버지의 뒤를 내가 응당 이어야지요.저는 아버지가 섰던 전기로의 용해공이 되겠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과정을 마치고 사회진출을 앞둔 그의 앞길에는 넓은 길이 열려져있었다.연구기관을 지망할수도 있고 중앙기관에 배치받을수도 있었다.그러나 자기가 서야 할 자리는 아버지가 서있던 그 전기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나주셨던 그 뜻깊은 초소라고 생각하고 이미 결심을 내리고있었던것이다.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진응원동지는 그의 두손을 쓰다듬어주며 《암, 우리 강선의 전기로에서야 주홍빛쇠물외에 다른것이 나올수 없지.네 결심이 그렇다면 정말 고맙구나.… 고마와!》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진영일동무는 아버지가 지켜섰던 전기로앞에 섰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까지 할아버지처럼 온 나라가 아는 강철전사가 될 결의를 안고 기업소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로 자라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진응원동지,
그는 오늘 우리곁에 없다.
하지만 《쇠물집》의 바통, 천리마대고조를 낳은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은 후손들에 의해 이렇게 이어지고있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위대한 우리 당의 믿음과 사랑은 수많은 진응원을 낳았고 그와 더불어 강선의 충실성의 전통은 꿋꿋이 이어지고있다.
* *
강선의 노을은 어찌하여 그토록 붉은것인가.
태양이 있어 노을이 빛나듯이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있어 강선의 노을은 꺼질줄 모르고 언제나 붉게만 피는것 아니랴.
사랑과 믿음, 충성과 보답으로 수놓아진 진응원동지의 영광의 인생은 오늘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새시대에로의 진군을 다그쳐나가고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있다.
이 땅에 태를 묻고 사는 사람이라면 절세위인들의 은덕을 순간도 잊지 말고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하라!
위대한 당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라!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