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화요일  
로동신문
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충신, 애국자들
민족적자존심과 과학적신념이 강한 세계적인 유전학자
원사 교수 박사 계응상선생

2023.3.19. 《로동신문》 3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랜 기간 품들여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과학자들속에는 우리 인민이 낳은 세계적인 유전학자이며 육종학자인 계응상선생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은 과학자들 한사람한사람을 품들여 키워 당의 두리에 성벽처럼 세워주신 과학자들의 자애로운 스승이시며 어버이이십니다.》

계응상선생은 1893년 12월 정주시의 어느한 빈농가에서 태여났다.어려서부터 남달리 향학열이 높았던 그는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이악하게 공부하였다.그때 그의 가슴을 제일 아프게 한것은 세계적으로 력사가 오랜 우리 나라의 잠업이 농촌초가집의 골방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것이였다.하기에 그는 우리의 잠업을 일으켜세울 포부를 안고 고향을 떠났다.누에며 뽕밭을 찾아 조선팔도는 물론 현해탄을 건너 고달픈 탐구의 길을 이어갔지만 가는 곳마다에서 모진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이역땅에서 고학으로 대학도 나오고 또 많은 론문도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식민지노예의 설음을 가셔줄수 없었다.

그러던 계응상선생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된 과학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딘것은 해방후부터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양으로 올라온 그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주체35(1946)년 10월 어느날이였다.그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우리 인민들에게 좋은 비단옷을 입혀주기 위하여서는 력사가 깊고 전망이 큰 우리 나라의 잠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누구나 건국사업만 생각하던 그때 인민들의 입는 문제해결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자기와 같은 평범한 과학자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실 때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반드시 훌륭한 과학연구성과로 받들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그후 그는 새 누에품종을 얻어내기 위해 연구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갔고 지난 시기 뽕누에 하나에만 치중하던 자기의 연구사업에 가둑누에, 피마주누에까지 포함시켜 그 범위를 더 확대시키였다.

특히 그는 수백년동안 피마주누에를 쳐오는 나라들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있던 피마주누에의 겨울나이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여 끝끝내 이전의것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세계잠학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귀중한 연구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다.

나라의 생사존망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한 과학자의 신변이 걱정되여 일군들을 보내주시고 마음놓고 연구사업을 계속할수 있는 조건도 보장하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보살피심이 있어 그는 방공호속에서 누에를 치면서 잠학연구사업을 줄기차게 내밀어 새 누에품종을 얻어내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과학적신념과 실험자료에 기초하여 생물학발전과 농업생산실천에 저애를 주고있던 《혼합유전설》과 《환경유전설》을 반대배격하고 유전자설을 옹호고수함으로써 유전학과 생물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몸소 중앙잠업시험장 장장의 중책까지 맡겨주시고 교수학직과 함께 박사증 제1호를 친히 수여해주시였을뿐 아니라 원사의 명예칭호도 선참으로 안겨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과 배려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고 그후 인민상을 받은데 이어 일흔번째 생일을 맞으며 당중앙위원회 이동정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하기에 그는 한생을 바쳐 유전학과 육종학분야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연구성과들을 이룩하였으며 그것을 리용하여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으며 생산성이 높고 병에도 잘 견디는 누에품종들을 수많이 얻어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조건에 맞는 합리적인 누에원종생산공급체계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누에치기를 과학화할수 있게 하였다.

그렇듯 한 과학자의 민족적자존심과 과학적신념을 귀중히 여겨 세계적인 유전학자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에 계응상선생은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한생토록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과학자로서의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었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러 세대는 바뀌였어도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참된 과학자로 인생의 자욱을 새겨온 계응상선생의 삶은 그가 남긴 공적과 더불어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생하고있다.

안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