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7월 15일 월요일  
로동신문
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충신, 애국자들
공화국의 첫 보건상
교수 박사 리병남동지

2023.3.26. 《로동신문》 3면



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애국충신들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는 해방전부터 소아과계통에서 의료활동을 꾸준히 벌려온 이름난 박사이며 성실하고 량심적인 애국자였다고 회고하신 리병남동지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리병남동지는 1903년 12월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고려치료도 해오던 평범한 가정에서 태여났다.나라없던 그 세월 의학연구에 뜻을 두고 공부한 그는 조선민족특유의 체질적우월성에 대한 론문을 발표하여 의학박사의 학위까지 받았다.하지만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했다는 죄 아닌 《죄》로 하여 일제침략자들의 모진 박해를 받은 그는 학계와 인연을 끊고 개인병원을 운영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한 그를 참된 애국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신분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주체37(1948)년 8월 21일이였다.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앞두고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어느한 대회에 참가한 대표자들속에는 리병남동지도 있었다.

회의휴식시간에 그를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함께 일을 더 많이 하자고 하시며 그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병남동지를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자신께서는 지난날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버리지 않고 살아온 량심적인 의학자인 동무가 능히 통일적조선중앙정부인 공화국정부의 보건상의 직책을 맡아 수행할수 있다고 본다고 하시며 그가 공화국의 첫 보건상으로 사업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리병남동지는 국가의 중요직책을 맡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한생토록 나라와 인민을 위한 참된 보건전사로 살리라 굳게 다짐하였다.하기에 그는 나쁜 놈들이 자기의 가족을 대상으로 비렬한 음모를 꾸밀 때에도 함흥지구의 보건사업을 개선발전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주저없이 출장길에 올랐다.

그후 그는 의약품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잘할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를 집행해나가는 사업에서도 자신의 순결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그는 짧은 기간에 후방병원들을 꾸리고 남진하는 인민군부대들에 전선군의들을 긴급히 파견하는 한편 해방된 지역에서도 수백명의 의료일군들이 공화국정부를 지지하여 떨쳐나서도록 하였다.

그 나날 그는 조선인민군 중장의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군의국장사업까지 겸하게 되였으며 1952년 8월에는 우리 나라에 온 국제과학위원회조사단 성원들이 미제의 세균전만행을 온 세상에 폭로하도록 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그후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나날에도 그는 보건상으로서 우리 당의 인민적인 보건정책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갔다.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은정어린 손목시계도 선물로 받아안았으며 오래동안 앓고있던 위병때문에 수술을 받았지만 수령님의 은정속에 병을 털고일어나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정력적으로 일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생을 마친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간 주체75(1986)년 가을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혁명전사들의 이름속에 리병남동지도 세워주시며 그를 평양에 새로 건립된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오늘도 리병남동지는 당에 무한히 충직하였던 우리 국가의 초대보건상으로, 참된 애국자로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안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