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 《로동신문》 4면
공훈산림공 강영수동무
운산군산림경영소 북진로동자구산림감독원 강영수동무는 나라의 첫 공훈산림공이였던
그는 담당림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에도 몇차례씩 산을 오르내리며 해마다 수만그루의 나무들을 심었고 어느곳에 수종이 좋은 나무종자가 있다는 말만 들으면 주저없이 먼길을 떠나군 하였다.
낮에는 수십리 산길을 톺으면서 나무들의 생육상태를 관찰하며 필요한 대책을 세워나갔고 저녁이면 산림부문의 지식을 습득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양묘장의 애어린 나무모들과 산에 심은 나무들이 비바람에 상하거나 병해충피해를 입지 않도록 늘 마음쓰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담당림에서 살다싶이 하는 그의 마음속에는
하기에 그는 아들도 산림감독원으로 내세워 온 가정이 산림조성과 보호사업에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도록 이끌어주고있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와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그 어떤 평가나 보수도 바람이 없이 변함없는 애국의 마음을 안고 한생을 푸른 숲에 바쳐가고있는 그를 우리 당과 국가에서는 공훈산림공,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
공훈자동차운전사 김철동무
평양건설위원회에서 굴착기운전공으로 일하고있는 김철동무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배낭을 푼 그날부터 오늘까지 수십년세월 수도의 대건설장들에 자신의 땀과 열정을 깡그리 바쳐왔다.
오랜 세월 굴착기를 다룬다는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하루종일 육중한 중기계와 씨름질하고나면 팔다리가 강직되여 한동안 모지름을 쓰며 운전칸에서 내려올 때가 적지 않았다.
여름이면 그늘 한점 없는 공지에서 일하느라 무더위에 시달려야 했고 겨울이면 손이 떡떡 얼어붙는 쇠붙이들을 다루느라 온몸이 가드라들기도 했다.
언제인가 창전거리건설장에서 그의 굴착기가 고장으로 멎어선적이 있었다.많은 량의 토량을 시급히 운반해야 할 자동차들이 자기의 굴착기앞에서 발동을 멈추는것을 보며 그는 심한 자책감을 느꼈다.하여 그는 그후부터 어쩌다 차례지는 휴식날에도 예비부속품구입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고 교대가 끝난 깊은 밤에도 경험많은 운전공들을 찾아다니며 기술기능수준을 높여나갔다.
만수대거리에서 창전거리로, 또다시 미래과학자거리에서 려명거리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 새 거리건설장마다에서 그가 밤낮으로 퍼올린 토량을 쌓아놓는다면 아마도 하나의 큰 산을 이룰것이다.
하기에 당과 국가에서는 2022년 12월 화성지구 1단계 1만세대 살림집건설에서 또다시 로력적위훈을 세운 그에게 공훈자동차운전사의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었다.
그는 오늘도 크나큰 그 사랑과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수도의 살림집건설장에서 굴착기의 동음을 높이 울려가고있다.
공훈뜨락또르운전수 봉광식동무
연산군 공포농장에는 뜨락또르와 함께 한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기계화분조 분조장으로 일하고있는 봉광식동무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농장에서 뜨락또르운전수가 부족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뜨락또르운전수가 되겠다고 자진하여나섰다.하여 양성소를 졸업하고 뜨락또르운전수가 된 때로부터 그는 수십년간 어느 하루도 손에서 조향륜을 놓지 않고 포전에서 기계화의 동음을 높이 울려갔다.
그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피타는 노력을 기울여 뜨락또르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고 드넓은 농장벌을 달리며 각이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능숙하게 뜨락또르를 운전할수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터득하기 위해 애썼다.
뿐만아니라 필요한 부속품과 공구들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면서 함께 일하는 운전수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여 20여명의 끌끌한 뜨락또르운전수들을 키워 농장의 기둥감들로 내세웠다.
결과 해마다 군에서 진행하는 뜨락또르출동식에서 그의 분조는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하군 하였다.
그는 주체103(2014)년 2월에 진행된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에 참가하여 꿈결에도 뵙고싶던
그후 공훈뜨락또르운전수칭호를 수여받은 그는 당과 국가의 사랑과 믿음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자기의 뒤를 이어 뜨락또르운전수로 일하고있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오늘도 농장벌에 성실한 땀과 량심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